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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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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숙 첫 제사


BY 그린플라워 2013-05-15

어느새 시숙 일주기가 되었다.

지난주 시어머님 첫제사를 내가 장보고 마음 맞는 네째동서와 막내동서와 함께 잘 치뤘다.

그날 밤 한되 깐 것을 보면서 형님이 "밤 비싸지?"

난 이제 이십년을 형님과 지내다 보니 한마디만 던져도 단박에 뭔 뜻인지 안다.

"몇개 남겨 드릴 테니 다음주 아주버님 제삿상에 놓으세요. 그리고 대추도 덜어 드릴께요."

형님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아마 마음 같아서는 곶감도 나눠달라고 하고 싶었을 게다.

쌀도 내가 사간 쌀 쓰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오늘 나는 형님이 사과 한개 배 한개 부침개 한접시 놓고 지낼 게 뻔하므로 일 도와주러는 가지 않고 느지막하게 나섰다.

가는 도중에 미리 가서 수고했을 막내동서에게 문자를 했다.

"제사 때까지 기다리다 밥 먹으려면 배고플 테니 시장으로 나와. 밥 사줄께."

막내동서가 전화를 해 왔다.

"형님~~~ 한시부터 조금 전까지 일 시켜놓고 점심밥을 안 주는 거예요. 배고파서 수제비 한그릇 사먹고 큰집으로 가는 중이예요."

"헐~"

다른 제사 때는 점심식사나 참꺼리를 내가 준비해 가서 비빔국수도 해 먹고 부대찌개도 끓여먹곤 했는데

어쩌면 밥 준비도 안해 놓을 게 뭔가.

나도 한그릇 사먹고 가려다 한끼 굶는다고 쓰러지랴 싶어서 그냥 갔다.

 

다른 제사에는 손끝도 까딱 안 시키더니 시아버지 제사라고 새며느리가 와 있었다.

제사음식의 달인 막내동서가 도착하기 전에 형님과 새며느리는 칠 수 있는 사고는 다 쳐 놓은 상태였단다.

꼬지전은 맛살을 반 가르지도 않고 그걸 세워서 꿰고 그 두께에 맞춰 햄은 목침처럼 썰어서 개발새발 꿰어 놓고

코다리 간장 절임은 물을 너무 많이 부어서 해 놓은 걸 며느리가 지져서 전쟁터에서 포탄 맞은 것처럼 오갈사갈나게 해 놓고 생선전은 소금도 안 뿌리고 그냥 밀가루 묻혀 놓고 부추전 밀가루 개는 것도 너무 적게 개서 부치다가 다시 개서 부쳤다고 했다.

이십여년을 동서들에게 일거리를 팽개쳐 놓고 미꾸라지처럼 나돌아다닌 결과다.

동서들 한 것 구경이라도 자세히 했다면 그렇게까지 하랴마는...

밥은 며느리가 사왔다는 김밥 세줄을 한줄씩 먹고 네시까지 일을 했는데 밥 줄 생각도 안 해서 만삭인 새며느리도 배가 고픈지 근처 자기 집으로 가버리고 형님은 빠진 거 장보러 간다고 나가길래 막내동서는 배가 고파서 뭐라도 요기를 하려고 나간 거였다.

 

어쨋든 제삿상을 차려야 했으므로 상을 차리자니 곶감이 없다.

형님 말로는 무당인 자기 동생이 곶감은 없어도 된다고 해서 안 샀단다.

곶감이 열개에 만원은 줘야 하니 형님한테는 천문학적인 거금이어서 안 샀겠지만 뺄 걸 빼야지...

세개라도 살 것이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무당 말을 왜 들어?" 하니까 새며느리가 자기라도 가서 사오겠단다.

내가 다른 이 시켜서라도 사자니까 형님이 필요없다는데 왜 그러냐고 짜증을 냈다.

 

그 와중에 형님은 '오자룡이 간다.'를 봐야겠다면서 크게 틀어놓고 보고 있었다.

슬프지 않더라도 슬픈 척이라도 하고 TV 시청이라도 자제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리하여 시숙 친구 다섯분이 제관으로 왔지만 곶감도 없는 제삿상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돼지고기는 큰 덩어리를 제대로 안 삶아서 썰어서 먹으려는데 핏물이 쫙 번졌다.

핏물을 피해 일단 음복상을 차려 내고 난 밥도 안 먹고 수발만 들고 돌아왔다.

그 와중에 제관들이 봉투를 내밀자 봉투마다 얼마 들었는지 확인하느라 형님은 분주했다.

우리 온 다음에 봐도 안 늦겠건만...

시동생 둘은 어이가 없는지 식사를 끝내자마자 가고 말았다.

 

밥을 두솥이나 했는데 남으면 찬밥 먹기 싫다고 막내동서와 내게 남은 밥을 싸가라고 했다.

며느리한테도 그러라고 했지만 아무도 안 가져가겠단다.

형님은 "아유~ 난 손이 커서 큰일이야." 하길래

내가 "손이 큰 게 아니고 대책이 없는 거예요. 요즘 누가 그렇게 밥을 많이 먹는다고..."

시어머니도 안 계신 시댁에서 내가 나이도 제일 많아서 이제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언제 손 크게 인심한번 쓴 적도 없는 조막손 맏동서에게 들이받았다.

 

내년 제삿상에는 곶감 빠뜨리지 말라고 새며느리에게 당부하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