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김장철이면 나와 대구 사는 네째동서가 제일 많은 힘을 보태야 시댁 김장이 마무리 되는데
올해는 시어머님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완치가 안 된 상태라
밭에 겨우 배추는 심으셨지만 고추농사는 작파하셔서 고추가루도 없다.
김장을 할라치면 태양초 고추가루 백근을 빻아서 열근씩 각자 집에 나눠주시고 오십근을
김장에 쏟아부으시던 시어머님께서 형님이 열근 사온 고춧가루를 보고 하품을 하신다.
마늘도 스무통 남짓하게 샀는지 얻었는지 어머님 방에 까시라고 놓인 게 보였다.
김장 때마다 젓갈 외에 모든 야채를 어머님께서 손수 지으신 것으로 풍성하게 넣곤 하셨는데...
어지간하면 내가 시댁김장까지 업어서 하련만 17년을 고생하고 나니 올해는 좀 꽤가 나기도 하고
친정김장에 동생들 것까지 하는 내 김장에 더이상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력이 없어 안 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지난 주말에 친정에 가서 이틀간 김장 해드리고 와서
며칠 동안 마늘 까고 오늘은 장 봐서 양념이며 야채 손질하고 내일 섞어 넣으려고 분주한데
형님(두살아래 철부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난 형님 전화를 받고 뚜껑 안 열린 적이 별로 없다.
이제 이골이 날 만큼 났으므로 평상심으로 받으려고 마음 단단히 먹고 수화기를 들었다.
"왠일이세요?" 하니
"아이고, 어머님께서 또 일 저지르셨다."
"왜요?"
"배추를 70포기나 절여 놓으셨지 뭐야? 자네 내일 올 수 없나?"
"에고~ 어쩌나 오늘 내일 우리 김장하느라 안 되는데요."
"여기 와서 하면 안 돼?"
(환장하겠다. 100킬로 절임배추 샀는데 그걸 내동댕이치고 자기네 김장해 주러 오면 안 되냐는 거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 일 젖혀두고 가게도 문 닫고 갔었다.
며칠 전에 시댁에 갔을 때 김치 냉장고에 쓴맛으로 썩어 있거나 통마다 들어 있던 김치들이 떠올라
올해는 정말 안 가고 싶다. 난 해마다 헛짓 한 거였으니까.
막내동서도 올해는 자기네 배추만 시댁에서 절여서 집으로 가져 가서 담궜다.
"올해는 친정에서도 김장하고 내일 우리 김장 준비도 다 해 놓은 터라 도저히 안 되네요."
"아유~ 그럼 나도 몰라. 나도 요새 바쁘단 말이야."
(알바 가는 거 하루 빠진다고 더 나빠지는 상황도 아니면서 늘 무슨 핑계고 대는 거다. 이래저래 병 중의 시어머님께서 김장하시게 생겼는데 고춧가루도 마늘도 턱없이 부족한 김장을 무슨 수로 하시겠는가. 올해는 강화도에 젓갈 사러도 못가시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마음이 무겁다.
김장 안 담근 동서가 한명 있는데 그 동서더러 와서 해 가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동서는 형님보다 더 뺀질이라 가능할지 모르겠다.
절여 놓은 배추를 나몰라라 하기도 그렇고 여차하면 올 김장은 세번 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