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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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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풍경


BY 그린플라워 2009-01-29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을 맞았다.

극심한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모처럼 맞이한 명절특수...

명절 때마다 어김없이 오는 단골손님들의 주문음식을 올해는 달랑 혼자 해내느라

며칠을 준비작업으로 분주했고 구정전날에는 새벽부터 동동거려야 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어 홍삼가게 하는 이가 와서 전에 밀가루 묻히는 일을 도와주었다.

아무리 일이 밀려도 부침개는 약한 불에 인내심을 가지고 부쳐야 속까지 잘 익고 겉은 노르스름하다.

찾으러 오겠다는 시각에 맞추느라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지경인데...

 

애들아빠는 빨리 끝내고 같이 출발하지 않는다고 신경질이다.

우선 꼬지전 한소쿠리와 사골국물과 어머님을 위한 홍삼한박스를 건네며 먼저 가라 했다.

오후 여섯시쯤 예약한 손님들 것은 다 보내고 뒷정리와 설겆이를 하려는데 또 애들아빠로부터 독촉전화가 왔다.

 

난장판을 그대로 두고 시댁에 가져갈 반찬을 챙겨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댁에 갔다.

오후 7시 30분경 시댁에 도착하니 애들아빠가 눈을 부라리며 "이제 오면 어떡해?" 한다.

며느리가 다섯이고 음식도 조금만 하여 다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일부는 목욕을 간 뒤였는데

뭐 그리 탈될 것도 없겠구먼...

예전 같았으면 대역죄인 시늉을 하고 하루종일 굻고 일한 속에 뭐 먹을 생각도 안했으련만

나도 많이 컸다.

애들아빠에게 한마디 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

뒤늦게 온 막내시동생과 겸상을 차려 걸지게 먹었다.

 

애들아빠는 화를 못 삭여 계속 깐죽거린다.

깐죽거리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손님들이 카드결제를 주로 하는 바람에 명절에 쓸 돈이 태부족인데

돈을 안 주면 어쩌나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잠자리에 들기전 마지못해 던지듯 돈을 건네 준다. 후유~~

 

명절 때마다 늦게 가는 죄로 그많은 설겆이는 도맡아 하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밤 치는 일이나 황백지단 부치는 일은 꼭 해야 한다.

미안한 마음에 동서들에게나 조카들 선물도 한아름 사들고 가곤 했는데

올해는 네째동서 막내딸 초등학교 입학하는 축하금 10만원만 건넸다.

 

형님은 올해도 여전히 일은 거의 안하고 밖으로 나돌아 다녔으며,

뺀질이 세째동서도 여전히 밥숟가락 놓은 뒤에야 나타나 제일 늦게까지 밥 먹고 또 자러 갔으며...

결국 네째동서와 막내동서가 음식준비는 다 했단다.

네째동서는 만두속 200개분과 닭매운탕거리를 준비해 왔고

막내동서는 잡채를 만들어 왔다.

 

나를 제외한 며느리가 넷이어도 일손이 부족해 만두는 네째시동생이 만들었단다.

어머님은 관절염과 영양실조로 쓰러지기 직전이셨다.

그 몸으로 새벽녘에 일어나 두군데의 연탄불을 다 가시고 계셨다.

함께 사는 맏며느리는 거의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이득 될 만한 일에만 헤헤거리면서 덤빈다.

 

밤에 네째동서가 사온 과메기를 먹다가 마늘과 쪽파가 떨어져 형님에게 물으니

아무것도 없단다.

평소에도 먹을 게 거의 없이 살지만 동서들이 모일 때면 그 증세가 더 심해져서 양파나 파조차 없다.

그걸 아는 나와 네째동서와 막내동서는 아무것도 추가할 필요없는 완제품 음식을 해간다.

17년을 잘 견뎌온 난 성격이 바뀌고 있다.

형님이 있는 자리에서 한마디 했다.

"다음부터는 통마늘과 쪽파도 휴대하고 오도록 하자구."

 

구정날 아침 일찌감치 새배를 마치고 차례상을 차렸다.

차례상을 차리던 네째동서가 입이 댓발 나온 게 보였다.

"왜 그래?"

"형님이 오늘 가래잖아요. 갈 친정도 없는데... 막내동서네라도 가라고 하네요."

"에휴~ 우리집으로 가자. 우리 가게 털면 먹을 거 많이 나올 게야."

"애들아빠가 그러려고 해야 말이지요."

 

식사시간에 난 허기만 면하고 잽싸게 일어나 설겆이를 시작했다.

형님은 식사 후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머지 세동서는 작은집으로 차례모시러 가버리고

설겆이는 하염없이 이어졌다.

설겆이가 끝나갈 무렵 형님이 나타나 방으로 들어간다.

일을 마친 난 예년 같았으면 그런 형님이라도 같이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으련만

어머님 방으로 갔다.

 

두시가 넘었는데 형님은 점심 먹을 생각을 안한다.

어머님께서는 "휴일에는 원래 두끼밖에 안 먹는다. 그냥 저녁 일찍 먹자." 하신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게임하느라 애들 셋이 남아 있는게 보였다.

어머님께서는 한사코 점심을 안 드시겠다고 하셨지만

양푼에 나물을 놓고 밥을 비벼 어머님과 아이들 셋과 점심식사를 했다.

예전 같았으면 형님도 같이 먹자 했을 터이지만 올해부터는 나 악녀하기로 작심했다.

아이들과 어머님께서 점심식사를 달게 하시는 걸 보니 마음도 좀 누그러들었다.

설겆이를 마치고 다시 어머님방에 누워 있자니 작은집에 갔던 식구들이 돌아왔다.

형님은 그제서야 부시시 일어났다.

 

그렇게 친지들 오는 거 싫어하는 형님 꼴을 보면서 저녁식사까지 하고 왔다.

막내네도 자기 집으로 가고 대구에 사는 두 동서네만 남았다.

우리 집으로 가서 자고 가라고 했지만 그냥 남겠다고 해서 우리 식구만 돌아왔다.

 

할 수만 있다면 제사까지 우리 집에서 모셨으면 싶다.

어머님 돌아가시면 형님꼴 안 보겠다고 벼르는 동서들 달래기도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