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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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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김장김치


BY 그린플라워 2008-12-01

해마다 시댁에서 김장김치를 담궈 오다 올해는 형님(나보다 두살 아래)이 절대로 동서들 김장은 못하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막내네만 큰집에서 하기로 했다.
난 집도 가게도 좁은지라 게다가 백포기 절일 통도 없어 큰집에서 배추를 절여만 오기로 했다.

어머님 댁에 얹혀 사는 형님은 어머님께 도움이 되기는 커녕 어머님 속 뒤집어 놓는 선수다.
이번에도 큰일을 앞두고 심하게 뺀질거리다가 형님은 불벼락을 맞았는가보다.
형님이 아우동서인 내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이 길다.
모르는 척하고 내일만 하기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가게를 하루 접고 어머님께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까지 왔어? 커피가 떨어졌는데 커피 좀 사와."
커피를 좋아하건만 꼭 스무개짜리만 사 놓는 형님이 딱해서
썩는 물건 아니니 180개짜리 사서 먹으면 안되냐니까 돈이 없어서 안 된단다.
돈이 없는 건 낭비가 너무 심한 탓도 있고 돈을 규모없이 쓰면서 평생 저축이라곤 모르는 사람이라 그렇다.
형님 씀씀이에 대한 조언을 누차 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생이 돈 흘리는 취미로 사는지 고쳐지지 않는다.
180개짜리를 살까 하다가 짐도 있고 하여 100개짜리를 사가니 반색을 한다.

김장 담글 고추를 닦아 시어머님께서 방앗간으로 가시려니까 나더러도 따라 가라 한다.
사십킬로가 넘는 고추라 당연히 모시고 가려 했는데 등이 떠밀린 게다.
두어시간 걸려 고추를 빻아 오니 바깥부엌에 김치통이 수북히 쌓여 있는데 김칫물도 못 닦은 통이 열개가 넘는다.
저 속에 담겼던 김치들은 다 어디로 갔을꼬? 아마 뒤뜰에 묻느라 바빴나 보다.

 

열근이 넘는 고춧가루를 받아들고 버스를 갈아타면서 돌아왔다.

 

월요일 아침 바쁜 중에 형님이 전화를 걸어 토요일에 절인 배추 가져갈 거면 금요일에 애들아빠 보내서
배추 절이는 일 도우란다.
기분은 나빴지만 어머님 일손 도우는 일이므로 그러겠다고 했다.
형님은 애들아빠 올 때 김장봉투 네장 사서 들려보내라 했다.
"김장봉투 한장에 오백원밖에 안하던데... 영등포시장에 김장봉투 팔 텐데..."
형님이 화를 내면서
"그럼 내가 사?"
아이고 미치겠다.
"꼭 필요한 거면 지난번 고추 빻으러 갔을 때 샀지요. 어머님께서 사지 말라 하셔서 안 샀는데..."

 

목요일에 어머님과 통화하다가 기겁을 했다.
"너거는 김장 우얄끼고?"
"금요일에 절여서 토요일 아침에 가져오려고 하는데요."
"니들 멋대로 해라."
전화가 탁 끊긴다.

 

막내동서에게 전화를 해서 알아보니 형님이 어머님께 아무말도 안하고 있어서 화가 나신 거란다.
막내동서가 어머님과 김장날짜를 정한 걸 형님이 막내에게 왜 자기랑 의논하지 않고 어머님과 의논했냐고 화를 냈단다.
김장 때마다 일하기 싫어 무슨 핑계라도 대고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빠져나가곤 하는 사람인지라 막내동서도 어이가 없었다 한다.
이번에도 마늘 한쪽도 안 깠단다.
게다가 막내동서에게 김칫통은 몇개나 가져올 것인지 물었는데 다섯통 가져간다니까 뭐 그리 많이 가져오냐고
80%씩만 담아가라고 했단다.
집집마다 드리는 재료비 이십만원씩으로 젓갈이며 생새우며 사서 하는 김장을 형님은 돈 한푼 안내고 일손도 안 도우면서...

 

어머님 화를 풀어드리기 위해 시댁으로 가보기로 했다.
형님은 그 와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님께 갈 거면 빨리 가란다.
화가 치밀대로 치민 난 처음으로 형님에게 큰소리로 들이받았다.
"가더라도 내 형편대로 갈 거다."
떡 본김에 굿한다고 내가 간다니까 일찍 올라가서 저녁상 차리라는 거다.
일곱시에 가게에서 나섰어도 지하철을 세노선을 이용해 가다보니 아홉시가 다 되어 시댁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형님과 통화를 한다는 건 인내심을 요하는지라 안 받았다.
열심히 가는 도중에 전화를 걸어 반찬 뭐 해오냐, 많이 해오냐, 몇시쯤 도착하냐, 오다 뭐 사와라... 대충 그런 전화인데
그래도 여태 그 부탁을 다 들어줬지만 이번만은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안 받으면 못 받을 상황인가보다 하고 그만둘 것이지 끈질기게 온다.
 
지하철을 빠져나왔는데 또 울리길래 할 수 없이 받았다.
"왜 전화를 안 받아?" 목소리가 앙칼지다.
"못 받을 상황이라 그랬어요. 뭔 일이래요?"
"어머님이 오지 말래."
"거의 다 왔어요."
내 목소리도 짜증이 섞였다.

시댁에 가니 저녁식사는 하셨다는데 분위기는 험악했다.
들고간 물건들만 내려 놓고 소금물에 잠겨진 배추를 꺼내 줄기 사이사이에 소금을 쳤다.
"밥 안 먹었으면 먹고 해라."
밥 먹을 기분도 아니고 어머님 혼자 일하시게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 그냥 소금만 열심히 쳤다.
열한시 가까이 되어서야 소금치는 일이 끝났다.
형님은 뭐를 하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할일 없어도 도울 사람도 아니지만...
형님이 절구에 마늘을 찧기 시작했다. 두집만 하는 김장이니 얼마 안 가 끝났다.
이번 김장에 유일하게 일조를 하는 셈이다.
여느 때 같으면 형님과 잤을 텐데 어머님 방에서 잤다.

 

곤하게 자는데 형님이 깨운다.
"어머님 벌써 일어나 일하고 계셔. 빨리 일어나."
세수도 못하고 배추 씻는 일에 나섰다.
지하수를 고무다라이 다섯개에 채워 물을 흘려보내면서 수시로 물을 갈면서 다섯차례씩 배추를 씻었다.
열심히 배추 씻고 있는데 형님이 나온다.
"나 가게 나가봐야 해서 나가니까 밥 차려 먹어. 그리고 밭에 있는 배추 좀 날라다 놓고 가."
가게 문도 못 열고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자기가 해야할 일까지 하라고 하고 간다.
열시가 넘어 배추씻기가 끝나 아침식사를 하려고 보니
내가 해간 삼치조림과 멀건 김치콩나물국이 가스렌지 위에 있다.
묵은지는 다 버렸는지 옆집에서 줬다는 익지도 않은 얼갈이김치를 콩나물과 같이 끓여놓은 것이다.

 

그나마 차린 밥상에서 어머님은 삼치조림반찬으로 밥을 반공기도 채 못 드신다.
식사를 왜 그리 하시냐니까 오늘을 많이 드신 거라신다.
그 식사를 하시고 무슨 일을 그리 많이 하시는지...

식사 후 집 뒤 텃밭에 심은 갓을 뽑아 주셨다.
무 반자루와 갓과 절인 배추를 싣고 가게로 가 이틀에 걸쳐 김장김치를 담궜다.
어쨋든 혼자 하니 마음은 편했다.

 

오늘 막내동서에게 전화를 하니 이틀동안 어머님과 김장 담그고 나서 파스를 다섯군데나 붙이고 있는 중이란다.
형님은 막내동서가 배추 절이는 날에는 오밤중에 들어와 일 안하고 잤고
다음날은 막내동서와 어머님께서 배추 씻는데 안쪽 부엌에서 안하던 설겆이까지 하면서 꼼지락거리다가
마당에 떨어진 은행 줍는 일로 소일하고 굴 먹고 싶다고 하더니 어머님께서 주신 돈으로 굴과 생태사러 갔다 오는 일로 시간 죽이고
자기집 김치통은 두개정도만 속 넣는 일로 힘썼단다. 그 많은 김칫통을 채우는데 어머님과 동서가 거의 다 한 게다.
두사람이 삼십분정도 넣으면 될 만한 배추가 남았길래 남겨두고 막내동서는 자기집으로 갔다는데
막내동서 가고 나서 남은 배추를 어머님 혼자 저녁 여덟시까지 하셨단다.
더 기막힐 일은 막내동서에게 무슨 자랑이라고 묵은지 여섯통 남은 거 뒤뜰에 묻었다고 했단다.
게다가 둘째는 욕심이 많아서 거의 다 가져갔고 밭의 배추도 안 옮기고 갔다고 궁시렁거렸단다.
난 충분한 댓가를 치르지 않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어머님 고생하신 물건을 다 가져올 만큼 배짱도 없다.

 

오늘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얘야 밭의 배추가 아까워서 또 절였는데 너 가져가서 김치 담그면 안 되겠니?"
"아이고 어머님 저 김치 더이상 팔 데도 둘 데도 없어요. 안하면 안 될까요?"
"그 배추 니가 안 가져 가면 땅 파고 독 묻고 김치 담궈 넣어야 하는데 이제 남은 기운이 없다..."
"..."

결국 작년처럼 절인 배추를 또 받기로 했다.
사방에 전화해서 필요한 사람들을 물색하는 중이다.
김치 담그다 쓰러져도 담궈서 김치만 먹고 살게 되어도 형님처럼 최소한 묵은지로 만들어 파묻을 일은 없을 것이므로
가져다 담그기로 했다.
애들 아빠도 운반해 주는 일만으로도 화를 내지만 어머님 일인데 어쩌랴.

 

막내동서는 한달에 한번씩 어머님께 가서 식사시중을 든다고 한다.
나도 열일 젖혀두고라도 최소한 한달에 한번만이라도 어머님을 찾아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