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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주문음식


BY 그린플라워 2008-10-08

월요일 아침 바쁜 출근길에 문자메시지 오는 소리가 나길래 열어 보니
단골손님으로부터 '김치콩나물국 한냄비와 깍두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어제는 상가가 쉬었으므로 오늘은 손님 유무와 관계없이 바쁜 날이다.
주문하는 이도 그 상황을 아는지라 오늘이든 내일이든 시간 나는대로 해달란다. 

연이어 오는 문자메시지에 난 당황하기 시작했다.

'남동생이 말기암 환자인데 뭘 통 먹지를 못하네요. 환자식이므로 간을 약하게 해 주세요.'
통화버튼을 누르고 오늘 중으로 해 주겠으며 되는대로 문자를 넣어주기로 했다.

 

국 끓이고 전 부치고 지지고 볶고를 하다 김치콩나물국을 환자를 위해 끓였다.
싱겁고 덜 맵게... 그대신 국물맛은 충분히 우러나게. 김치도 작게 썰고 오래 끓였다.
소화되기 쉽도록. 깍두기를 작게 썰까 하다가 잘라 먹더라도 중간크기로 썰었다.

얼마나 먹을지는 모르지만 커다란 무 반개로 깍두기를 담았다.
새우젓 조금 다지고 까나리액젓 조금 넣고 다진마늘 조금 넣고 생강은 즙만 약간 첨가했다.
고춧가루는 키토산 태양초 고춧가루를 약간 넣었는데도 색은 곱다.
만드는 손길마다 눈물이 괸다. 흐르는 대로 두다가 일에 지장이 있어 닦기도 한다.
마늘을 조금 넣는 대신 양파를 곱게 다져 마늘처럼 보이게 했다.

 

먹어보니 약간 싱겁고 맵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맛이 있다.
판매용이면 바로 냉장고로 들어가지만 약간 익혀 냉장보관하는 게 나을 듯해 상온에 두었다.

음식이 다 되었다고 문자를 넣었다.

한시간 뒤 전화가 걸려왔다.
몇시까지 계신가고. 병원에서 돌아왔는데 가게까지 갈 기운이 없어 조금 쉬었다 가겠노라고...
올 때까지 기다리마 했다.

 

찾으러 온 이는 평소 고운 자태와는 달리 수수한 차림에 얼굴이 부석부석하다.
다른 일도 많을 텐데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에게 돈은 안 받겠다고 했다.
그냥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든 음식이니 환자가 잘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갖가지 야채로 알록달록 끓인 야채국도 덤으로 넣어 챙겨 주니 할말을 못 잇는다.

 

환자에게 부종이 심하게 와 거의 못 먹는데 설렁탕에 따라온 깍두기를 해서 조금 먹었다길래
깍두기를 주문한 것이라 했다.

생존가능성은 희박하고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 한다는 것이다.
사골곰국과 감자조림, 그밖에 몇가지 반찬을 더 사가지고 갔다.

 

가는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 가슴이 아려왔다.
내가 만든 음식이 그 환자에게 도움이 되어 며칠이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기도해 본다.
다 먹고 또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