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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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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덕분에 죽쑨 날


BY 그린플라워 2007-12-23

전시회 오픈하는 날
모처럼 화장도 하고 미용실에도 다녀오고 동생차도 대기시켜둔 상태.
가야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무수리옷을 벗고 원피스에 하이힐로 변신...

선거일이라 평소보다 한가하여 도우미도 쉬라고 했는데
어떤 손님이 제사음식을 맞추겠다고 왔다.
토요일 14시경에 찾게 해 줄 수 있냐는 건데.
제사음식은 평일에 해야 넉넉히 부친 전으로 단골손님들까지 즐겁게 할 수 있는 터라
좀 망설여졌지만 지난 번에 해 주신 제사음식 덕분에 잘 치렀노라는 이에게
핑계를 대기가 뭣해서 해주겠노라고 했다.
카드로 완불결제 하고 갔다.

전시회에 가서 저녁식사까지 잘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불현듯 제사음식이 생각났다.
'어머~ 이를 어째? 그날 오전에 전시당번하겠노라고 신청했는데... 제사음식 못해 주겠다고 연락을 해야 하나?'
한선생님께 문자를 날리고 그래도 불안하여 홈피에 댓글까지 올렸다.
그러고보니 22일은 동지팥죽장사를 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제사음식은 고사하고 팥죽 쑬 준비도 하나도 안하고 있었던 게다.

다음날 팥죽 쑬 장보기를 하고 인터넷에 팥죽장사함을 올렸다.

그리하여 금요일 하루종일 팥죽과 씨름하고
토요일은 제사음식까지 겹쳤으므로 일찌감치 팥죽부터 넉넉히 쒀서 용기에 퍼 담아두고
전 세가지와 나물 세가지를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점심식사 같이 하자고 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숨이 턱에 닿게 예약음식을 완성해 놓으니 전화벨이 울린다.
"제사음식 부탁드린 사람인데요, 다 되었나요? 잠시 후에 가겠습니다."
"후유~"

제사음식 예약만 아니었으면 올해는 팥죽장사도 못할 뻔했다.
동짓날 장사도 작파하고 전시당번 서고 있었다면 어쩔 뻔 했을꼬?
올해는 동지가 토요일이라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제법 많이 다녀갔다.
이틀 동안 팔이 아프도록 팥 거르고 죽 쑤고 했건만
딱 한통 남기고 다 팔렸는데 전시당번들과 나누려고 경비아저씨들께도 못 드렸다.
올해는 건망증 덕분에 갖가지 에피소드를 연출했던 한해였다.
내년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보겠다고 다짐하건만 실현가능성은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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