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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년만에 빚어 본 송편


BY 그린플라워 2007-09-09

한국부인회 주관으로 자원봉사센터교육장에서
초중고생 학생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독거어르신들께 드릴 송편빚기행사가 있단다.
토요일도 요즘은 가게가 한가하지는 않지만 송편을 빚고 싶어서 무조건 신청했다.

송편! 도데체 얼마만에 빚어보는 일인가?

결혼 전 친정은 종가라 대소사 일이 무척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열네위의
제사를 받드는 일이 참으로 대단했다.
제사 때마다 온갖 제수에다 떡까지 해서 제삿상을 차리시던 친정엄마.
그 떡 중에 송편이 단연 친지들에게 인기가 좋아 한여름 제삿상에도 송편이 오르기 일쑤였다.
덕분에 솜씨 좋은 엄마 흉내를 내면서 자랐던 터라 어느 곳에 가던지
난 만두나 송편 빚는 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었는데...

늦은 결혼을 하고 결혼하던 첫해 시댁에서 추석을 맞이했을 때였다.
송편빚을 일이 있기에 냉큼 송편반죽을 시작하여 두레반에 가지런히 빚어 올리기 시작했다.
새댁이 첫 송편 빚는 광경을 지켜보던 시댁 식구들이 다들 구경만 했다.
혼자 잠자코 빚고 있는데
시어머님께서 들어오시더니 두어개 빚어 내가 빚은 송편 옆에 올려 놓으시고는
잠시 보시더니
시어머님께서 빚어 올려놓으신 송편 두개를 상 밑으로 슬그머니 내려놓으시고는 나가셨다.
그 바람에 혼자서 송편 두 되를 다 빚느라 혼이 났었다.
그 후로 시어머님께서는 송편을 집에서 빚지 않으시고 사서 제삿상에 올리셨다.
다섯 아들 중에 가장 사랑하시던 아들의 배우자인 난 무조건 시어머님께는 눈의 가시였었는데
송편 예쁘게 빚는 것조차 못마땅했던 것이다.
몇년이 흘러 시어머님의 혹독한 시집살이도 없어지고 모녀지간처럼 관계개선이 되었건만
자영업에 종사하게 된 내 일들이 명절 전후로 몹시 바쁜 업들이었던 고로
다시 송편 빚을 일은 없었던 게다.

오늘 난 주변 사람에게 가게를 맡기고 송편 빚기행사에 참여했다.
열 가정이 다섯조로 나뉘어 빚었는데 다들 각양각색 솜씨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가 빚은 송편을 두 번에 나눠서 쪄서 그 중에 예쁜 송편을 골라 시상대에 올리려는데
인심 좋은 애들아버지가 다른 조에 우리 송편을 나눠주고 왔단다.
그리하여 내가 빚은 송편이 다른 조에 섞여 있는 게 보였다.

송편은 빚을 때보다 쪘을 때가 더 예쁘다.
예쁘면 예쁜대로 울퉁불퉁하면 그 모습 그대로 다 그나름대로 보기 좋다.
마치 개성있게 자라는 아이들처럼...

일등은 각양각색의 모양을 내어 솜씨를 뽐낸 조가 되었다.
우리 조가 일등을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송편의 기존틀을 깨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한
조가 되었으므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추석전날 시간이 허락된다면
시어머님께 송편을 빚자고 말씀 드리리라.

송편을 다시 빚게 될 날을 고대하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