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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난 보름나물장사


BY 그린플라워 2007-03-04

해마다 반찬가게에서 치르는 큰일 중에 정월대보름날 찰밥과 나물장사가 가장 큰 행사이고

그 다음이 동지에 팥죽장사하는 것이고, 추석과 구정이 그 다음을 잇는다.

 

이번 보름날은 공교롭게도 토요일에다가 그 다음날은 한달에 두 번 쉬는 상가 정기휴일이었다.

일단 예년보다 장사를 덜하게 될 것이다.

연달아 평일이어야 문전성시를 이룰 수 있건만...

 

그래도 골수단골들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쉬는 일요일에도 정상영업을 하겠다고 관리실에 작업일지를 쓰고

네군데에 알림판을 붙였다.

 

우리 상가는 대형쇼핑몰인데 우리 층에 대형마트가 마주하고 있고

게다가 대형마트안에 있는 반찬가게는 우리 가게와 마주보고 있다.

그리하여 서로 얼마나 매출을 올리는지 어느 정도 가늠도 가능하다.

맞은편에서 반찬가게하시는 분은 그 자리에서만도 십삼년 되신 분이고

난 이제 막 삼년에 다가서는 중이다.

 

이번에도 큰 행사라 누가누가 잘하나가 관건이었다.

우리 가게 도우미는 주말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관계로 보름전날과 보름날에는

그나마 못 나온다.

그러기에 금요일에는 둘 다 나물준비로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열심히 했다.

혹 조기에 품절되는 나물도 생길 수 있으므로 남더라도 넉넉히 준비했다.

나박김치까지 담고 나서야 집으로 왔다.

 

새벽에 가게에 나가려고 알람을 맞춰뒀지만 몸이 말을 안들어

밍기적거리다가 깜빡 잠이 들어 여덟시가 다 되어서 헐레벌떡 가게로 갔다.

우선 찹쌀을 세군데로 나눠 불리고 팥과 강낭콩을 삶았다.

시금치와 콩나물을 무쳐내고 도라지, 고사리, 취, 무나물, 고구마줄기, 호박나물, 무청시래기, 피마자나물을 볶아 내어 4인용식탁에 전부 진열하여

뷔페식으로 각자 담아서 계산만 해 줄 수 있게 했다.

나물 볶는 중에 찰밥을 30인용 밥솥에 세차례나 했다.

 

10시가 조금 지나자 부지런한 손님이 왔다.

찰밥 만원짜리와 나물 만원어치를 사길래 첫손님이라 물김치를 덤으로 줬더니 반색을 한다.

장사는 개시가 중요한데 기분좋은 개시였다.

바쁜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내 손발이 되어주는 바로 밑의 여동생은 오늘 놀토라 아니라

학교수업을 마쳐야 온다.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설겆이도 쌓여 가고...

도저히 혼자 할 수가 없어 애들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게를 연 후 처음으로 가게일을 도와주게 된 것이다.

애들아빠가 설겆이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동생이 와서 임무교대를 했다.

하루종일 손님들이 밀려드느라 찰밥은 동이 났다.

찰밥재료를 더 사다가 한솥 더 하려고 했지만 동생이 말린다.

"그냥 있는 거나 다 팔고 말아. 남는 것보다 낫잖아?"

나물 중에 가장 인기있는 게 무청시래기볶음과 호박나물, 무나물이다.

오후 네시쯤 가지나물과 참나물을 빠트린 게 생각이 났다.

일단 가지나물을 볶아 냈다.

하필이면 작년에 제일 먼저 떨어져 재료가 없어서 못 팔았던 가지나물을 빠트리다니...

참나물은 더 놓을 곳도 없어서 내일 만들기로 했다.

저녁 아홉시에 집에 오려는데 마지막 손님이 헐레벌떡 온다.

그이는 깜빡해서 못 올 뻔 했단다.

찰밥을 못 사감을 아쉬워하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나물만 사갔다.

 

오늘 아침에도 의식은 깨었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가게를 열기로 했으니 어쨋든 나가야 했다.

어제와 똑같은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열두시가 넘어서야 첫손님이 왔다.

"문 안 여셨으면 어쩌나 하고 왔어요."

이것저것 나물들을 맛을 보더니 한팩을 사가면서

"오늘 몇시까지 계실 거예요? 맛있으면 또 사러 올 거예요."

 

잠시 후에 그 손님이 다시 왔다.

다시 오게 될 것 같아 아예 한팩 더 사가려고 왔단다.

오늘도 비바람 부는 와중에 여덟시까지 손님이 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일이 적어 며칠 동안 못했던 밑반찬들을 만들고 있는데

수퍼직원이 와서

"물오징어 무지 싸게 나왔는데 한 열짝 사시지요?"

"에구 내 팔자야. 오늘 같은 날 하필이면 오징어야?"

그리하여 여덟시가 넘도록 물오징어까지 손질하느라 쉴틈도 없이 일하다 왔다.

지금 내 몸이 주인을 떠나고 싶어할 게다.

그래도 목표치를 웃도는 매출을 올려서 기분은 좋다.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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