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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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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사람이 살았네


BY 그린플라워 2007-02-25

금요일은 바쁜 날이고 게다가 방학중에는 저소득층 방과후아이들 점심도 해줘야 하는데...

바로 아래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오늘 가게문 닫고 막내네 집에 청소해 주러 가면 안 될까?"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니? 지금 방과후아이들 점심준비하느라 정신도 없구먼."

"언니, 그거 해주고 그냥 문 닫고 가면 안 될까? 내일 막내네 집에 누가 집보러 온대."

 

다른 사람과 같이 가도록 수소문해보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걔가 청소대행업자에게 하도록 해도 되지만 꼭 언니들이어야 한대. 근데 세째는 오늘

중요한 약속이 두 건이나 있다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만 봄방학이라 늘어져 있을 세째동생도 쓸모가 없단다.

절박한 대화를 지켜보던 천사표 도우미가 한마디 한다.

"제가 대신 청소하러 가고 가게를 지키시는 게 낫잖아요?"

말은 고맙지만 그 청소가 오늘 안으로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동생이 다른 사람이 오는 건 싫다잖은가.

"그럼 미안하지만 한시간 더 연장근무해 주시면 내가 갈께요. 일곱시에 그냥 가게불 끄고

집에 가세요."

그 때부터 내 손길은 더 바빠졌다.

 

광화문에 근무처가 있는 막내에게 들러 아파트열쇠를 전해 받으려는데

막내는 점심약속이 있어서 외부에 있는데 가방을 안 가지고 갔으므로 열쇠는 회사에 있단다.

식후에 차까지 마시고 나타난 동생을 위해 우리는 그 복잡한 광화문 골목길을 뺑뺑이를 돌았다.

열쇠를 전해주는 동생이

"언니, 우선 가진 게 이것밖에 없는데 이거 받고 이따 집에 가서 더 줄께. 나 이번에 보너스도 듬뿍 받아서 돈 많아."

부자인 바로 밑의 여동생과 물욕이 없는 난 되었다고 했지만 한사코 받으란다.

막내네 집으로 향하는 중에 바로 밑의 동생이 그런다.

"언니, 우리가 그냥 해 줘도 되지만 돈은 일한 만큼 받기로 하자. 그래야 막내도 덜 미안할 거야."

그 돈 받아봤자 더 많은 돈이 막내동생에게로 갈 거였지만 일단 받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여는 순간 동생이

"언니, 우리 돈 여기 두고 도망가자. 오늘 안으로 끝내기는 글렀다."

"아무리 바빠도 우째 이렇게 어질러 놓고 사노?"

"언니, 오늘 주제는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네' 다."

 

둘이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우선 사방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물건들을 종류별로 차곡차곡 수납부터 해나갔다.

애들도 없이 사는 맞벌이부부의 살림살이가 왜 그리 많은지.

컴퓨터가 두대, 옥장판매트도 두개, 야쿠르트 제조기도 대형으로 두대, 진공청소기도 대형과 소형. 러닝머신까지... 각종 포켓볼 대회에서 우승한 상품으로 받은 물건들도 즐비하고

사방에서 선물받은 물건들까지 방하나는 발들여놓을 틈도 없었다. 어떤 물건은 포장도 안 뜯은 채였다.

유명인사들처럼 바쁜 생활을 하는 그들은 간신히 보이는 곳만 청소하고 살았던 터라

물건들을 드러내고 구석구석 쌓인 먼지들을 제거하는데 마스크를 준비못한 게 한이었다.

청소 틈틈이 세탁기도 두차례 돌리고 오래된 이불과 베개커버 등도 다 버리기로 했다.

오래된 욕실용품도 반은 버렸다.

 

저녁에 회식이 있다던 동생은 언니들이

"너 은행 털어가지고 최대한 빨리 집에 들어와. 아니면 도망갈 거야."

그러자 회식도 취소하고 들어왔다.

 

동생이 들어올 무렵 걸레 삶는 일만 남았다.

빨래 삶는 삼숙이도 대형으로 있었다.

 

우리는 아예 러브하우스를 만들어 줬다.

집에 온 동생은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벌린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나도 이렇게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어. 언니들 참 대단하다. 청소대행업자들도 이렇게까지는 못했을 거야. 고마워~~~"

 

그제서야 떡라면을 끓여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열시가 넘어서 들어온 동생 신랑은

"아니~ 방하나가 더 생겼네요."

 

좋아하는 동생내외를 보니 피로가 싹 가신다.

둬도 일년내내 쓸 것 같지도 않는 물건들을 두보따리 챙겨 가지고 집으로 왔다.

 

사실 나도 정리정돈은 젬병이다.

오죽하면 동샏들이

"언니는 결혼하면 쫒겨날 거야. 그거 면하려면 우리들이 일주일에 한번씩은 가서 정리해줘야 할 걸~"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난 정리정돈의 귀재와 결혼함으로써

그 염려를 잠재웠다.

 

오늘 난 우리 가게를 이사한 것처럼 털어내고 정리정돈을 다시 했다.

내일 도우미가 오면 깜짝 놀랄 거다.

남의 집을 정리해 주다 보니 나도 요령이 좀 생긴 셈이다.

힘은 좀 들었지만 덕분에 내 일터까지 훤해졌다.

다음에도 동생이 와 달라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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