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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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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친구의 죽음


BY 그린플라워 2007-02-09

애들아빠의 어릴 적 친구중 한사람이 어제 유명을 달리 했다.

별나게 똑똑하고 인정도 많은 그 사람 가는 길이 너무도 처절하고 쓸쓸하다.

 

일명 총알택시 운전기사로 영등포역에서 안산까지 거의 신기록을 수립해 가며

위험한 운전을 오랫동안 하여 아파트도 장만하고 개인택시도 장만하여

꽤 넉넉한 살림살이로 더러 부러움을 사기도 했던 그 친구가...

 

어느날부터인가 화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처음에는 꽤 많은 돈을 따서 운전수입은 푼돈이 되기도 했다.

 

노름으로 아파트를 청산해서 전세살이를 할 때만 해도

우리는 온 식구가 그 집으로 모임초대를 받기도 했다.

돈 씀씀이가 크고 인심도 좋은 그 친구와의 대면은 늘 유쾌했었다.

 

그것도 잠시 개인택시까지 처분하고 영업용으로 생계유지를 한다고도 했고

운전기사노릇도 그만두고 아예 하우스(전문노름방)에서 살다시피 한다고도 했다.

 

몇년 뒤 노름빚에 몰려 식구들이 단칸월셋방신세로 전락하고도

빚장이들의 공갈협박에 가족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노름빚이 수억이라고 했다.

부인과 아들 둘은 빚장이들을 피해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하고

공부잘하는 아들 둘은 좋은 대학에 척척 들어 갔다.

 

그 부인은 큰아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등록금이 없어 사방에 돈을 구하러 다녔다.

꽤 큰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그 친구의 친형까지 모른 척 했다.

우리도 간신히 남의 빚 다 갚고 겨우 전세집 마련한 터였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너무 딱했다.

애들아빠까지 만류를 했지만 난 연금보험 든 걸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그 입학금을 마련해 줬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입학금이니 도저히 외면을 할 수가 없었다.

훗날 그 아이가 잘 되었거나 혹여 잘못 되었을 때

그 입학을 포기한 것에 대해 얼마나 한을 품겠는가.

아버지 친구들이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조차 못 마련했다는 건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점점 폐인이 되어가는 그 친구를 애들아빠가 강제입원을 시키기도 했다.

심신이 다 지친 그 친구는 결핵에 걸렸다.

잘 먹고 잘 쉬면 나을 수 있는 병이건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본인의 호구지책의 일환으로

다시 운전대를 잠시 잡기도 했지만 병은 깊어만 갔다.

 

며칠 전 다시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병원에서 회복되어 나오기를 바랬는데

결국 갔다.

애들 아빠만 면회를 갔었고 가족조차 그 누구도 면회를 가지 않았다.

다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여겼을 게다.

게다가 다른 병도 아니고 결핵이었으니 혹여 옮기라도 할까봐 다들 바쁜 척 한 거다.

 

부음을 전해 듣고 문상을 가겠다고 했다.

왕복 다섯시간은 걸릴 거고 돌아오는 교통편도 없을 거라고 애들 아빠가 극구 만류했다.

 

너무도 쓸쓸할 장례식일 게다.

무덤도 못 만들 게고 하다못해 납골당 안치도 못 할 게다.

생전에 처자식조차 다들 진저리를 쳤으니...

인정머리없는 형제들이 그 주검에 슬퍼나 할까?

노모만 그 주검에 오열할 것이다.

 

오늘 하루 장사를 접더라도 문상을 다녀왔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나중에라도 그 부인의 얼굴을 어찌 볼꼬?

장례식장에 못간 죄인은 그저 조용히 고인의 명복만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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