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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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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쑨 날


BY 그린플라워 2006-12-28

올해는 동지가 애동지라 팥죽을 먹으면 아이들이 병이 날 지도 모른다는 설 때문에

팥시루떡을 먹는 동지란다.

해마다 동지면 반찬장사보다 죽장사에 더 전념해야 하는데 올해는 애동지라 좀 망설여졌다.

경기도 나쁜데 밥도 반찬도 아닌 죽을 누가 그리 사러 올까 싶기도 했다.

그리하여 예년 같았으면 얼마나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미리 전년도 상황을 보고

나름대로 궁리를 했을 터이지만 올해는 깜빡 잊고 있었다.

목요일이라 그림을 그리고 와서 부지런히 반찬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내일 팥죽 쑤실 거지요?" 단골손님의 말이 들려왔다.

"네" 대답을 하고 나니 이를 어째? 싶었다.

팥을 삶아내자면 우선 이웃 가게에서 대형 압력솥부터 빌려와야 했다.

작년에 빌려서 아주 요긴하게 썼던 밥솥을 빌려왔다.

2킬로의 팥을 앉혀 푹 삶았다.

옹심이용 찹쌀도 4킬로 담그고...

쌀은 당일 새벽에 담궈도 되므로 일단 귀가했다.

 

새벽에 알람소리에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벼뜨고 일어나 가게로 갔다.

어제 삶아둔 팥을 걸러 앙금을 앉히고 방앗간에 가서 찹쌀을 빻아 왔다.

도우미가 부지런히 새알심을 빚는 동안 도시락 집에 가서 대형 양푼을 빌려다

걸러둔 팥의 윗물을 따라 불려둔 쌀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죽을 쒔다.

쌀알이 반쯤 퍼지기 시작할 때 앙금을 조금씩 넣어가며 죽을 완성시켰다.

판매용 그릇에 죽을 푸고 옹심이를 열다섯알씩 담아 진열을 했다.

미리 안내장을 붙였어야 했는데 그제서야 다섯군데에 동지 팥죽 판다는 홍보용지를 붙였다.

같은 층에 전문죽집이 있어 그곳에 인접한 곳에는 그나마 부치지도 못하고...

 

드디어 첫손님이 다녀갔다.

생면부지의 손님인데 아주 수월하게 사갔다.

그 뒤로 죽이 팔리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나중에 혹 남으면 35인용 보온밥솥에 저장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죽을 쒀야만 했다.

고장마다 먹는 풍습이 다른 고로 걸죽한 팥물에 새알심만 듬뿍 넣은 팥죽도 준비했다.

어떤 이는 쌀이 안 들어간 팥죽은 싫다 하고

어떤 이는 쌀 안들어간 팥죽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작년까지 두 해는 친정엄마가 오셔서 팥죽을 쒀 주셔서 난 파는 일에만 전념했는데

경북 심심유곡으로 귀향하신 엄마를 모실 수도 없어 순전히 배짱으로

팥도 듬뿍, 새알심도 듬뿍, 소금간은 적당히...

그리하여 친정엄마께는 대단히 죄송할 말이지만 올해 팥죽이 제일 맛있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열심히 쒀댔다.

 

찹쌀을 더 담궈 옹심이를 더 만들었지만 마지막 손님까지 넣어주고 나자

결국 우리 집에는 옹심이 빠진 팥죽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팥죽 좋아하는 남편이 팥죽을 보자 반색을 하고 떠먹더니 아무리 휘저어도 옹심이가 안 보이자

"새알심은 없어?" 한다.

"마지막 손님까지 넣어 주고 나니 우리 건 빠졌네."

 

다음날도 팥죽손님은 줄줄이 왔다.

옹심이 없는 팥죽을 팔다가

"옹심이 없으면 안 살래요." 돌아가는 손님까지 생겼다.

하는 수없이 다시 옹심이를 빚는 수밖에...

 

오늘도 팥죽이 너무 맛있어서 다시 사러 왔다는 손님들 등쌀에 밀려

옹심이도 잔뜩 빚어 팥죽장사를 하다 왔다.

내일도 팥죽할미는 부지런을 떨어야 할 게다.

 

지난 보름에 나물과 찰밥장사를 하다가 손님들 등쌀에 밀려 일주일간 찰밥을 지었었다.

그 후로 이따금 찰밥하는 날까지 있어야 했는데...

 

우리 가게는 추석이나 구정대목보다 동지나 보름대목이 훨씬 더 크다.

명절에는 단골손님들 대부분이 시댁으로 가거나 집에서 음식장만을 하기도 하지만

동지나 보름에는 거의 사 먹기 때문이다.

 

벌써 보름날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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