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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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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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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잔칫상


BY 그린플라워 2006-12-03

드디어 어머님 생신날이 왔다.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으므로 아침부터 음식장만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한가한 토요일에 왜 그리 손님들은 밀려드는지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준비를 했다.

불고기는 한꺼번에 담지를 않고 두 봉지로 나눠 담고 무말이쌈, 마늘쫑진미채무침, 물미역과 브로컬리, 감자조림, 두부조림, 전 세가지, 달래겉절이, 감자샐러드, 낙지볶음을 준비해서

아들 배낭에도 넣고 난 양손에 휘청하게 들고 디지털단지역에서 만나기로 한 남편과 합류하기 위해 아이들과 지하철을 탔다.

가는 도중에 형님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왔다고 찍혀 있는 게 보였다.

전 같으면 재발신을 했을 터이지만 통화해 봤자 부아만 끓어오르게 될 게 뻔하므로 무시했다.

남편과는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아 역출구에서 만났다.

승용차에 타고 가는 도중에 전화가 또 온다.

거의 다 가게 되었으니 밥상 차리라고 했다.

형님은 멀건 미역국 한가지만 달랑 해 놓고 음식이 오기만 눈이 빠지는 중이었다.

뺀질이 세째가 왠일로 해파리냉채와 물오징어파강회를 만들어 왔다.

네째는 잡채와 꽃게무침을 해 오고, 막내는 고등어묵은지찜과 나물 세가지와 떡케잌을 가져왔다.

상을 차려놓으니 어느 한정식상 부럽지 않은 상차림이 되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다들 너무 맛있게 먹었다.

아주버님은 못 보던 음식들이 즐비하니

"이 음식은 몇번 솜씨예요?" 하면서 드신다.

어머님도 추석 이후 생선한토막 구경도 못한 황량한 식사만 하시던 중이라 이게 왠 일인가 싶으신 듯 했다.

다들 맛난 저녁식사를 한 후 제각기 싸온 그릇들 비우고 챙기기에 분주해진다.

형님은 음식을 해다 주면 그릇까지 꿀꺽할 뿐더러 그 그릇들이 그날 이후 절대로 다시 볼 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물건이고 제대로 간수를 하는 법도 없을 뿐더러 맛있는 음식을 보면 형님 친정엄마나 친정여동생 집으로 퍼나르느라 늘 그릇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넉넉히 해다 줘도 간수를 잘 못해서 상해 버리거나 밖으로 빼돌리는 바람에 어머님은

우리가 있는 동안만 식사다운 식사를 하실 뿐이다.

이번에도 그럴 게 뻔하므로 남은 음식들은 멀리서 온 대구 동서들에게 다 싸가도록 줬다.

형님 보는 앞에서 그랬다가는 왕짜증을 내므로 몰래 그리 하였다.

난 음식을 하면 손이 커서 왕창 하는 편이다.

먹고 남은 음식을 골고루 아우동서들에게 나눠 주면 굳이 우리끼리 몰래 음식을 빼돌릴 것까지 있겠는가.

아무리 많이 해가도 아주 조금만 꺼내 상차림을 하고는 콩반쪽도 안 주려고 버티는 형님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아랫동서들 마음이 상하기 일수기 때문이다.

상차림 하면서 접시하나 변변치 못해 전에 내가 사다 준 코렐 대접에 반찬들을 담으면서

구정에는 접시를 사이즈별로 사다 놓아야 하리라 마음 먹었다.

 

어머님댁에 얹혀 살면서 어머님께서 월세 받아 쓰시던 방까지 다 차지하고 살면서

용돈은 커녕 끼니도 제대로 안 챙겨주는 형님이니 큰집 살림이라고 해도 수저하나 접시하나 변변한 게 없다.

젓가락 짝 맞추다 못 견디는 사람이 수저세트 사나르고

음식 담다 기 막히는 사람이 접시 사나르고 살다보니 형님은 전혀 불편할 일도 없을 뿐더러

그저 버티다 보면 아랫동서들이 다 알아서 하니 갈수록 태산이다.

 

이번 김장에도 무채 써는 게 불편해 좋은 채칼을 사다 시범을 보이고 왔는데

부엌 식탁위에 두고 온 그 채칼을 어디다 뒀는지 못 찾아서 날도 무딘 칼로 무채 써시느라 어머님께서 고생이 심하셨다고 했다.

뭐든 사다 줘도 제대로 간수하고 요긴하게 쓰지도 않아 갈 때마다 휴대하고 갔다가 챙겨서

가지고 와야 할 판이다.

설마 바늘도 아닌 채칼을 못 찾아 쓰겠는가 싶어서 그냥 두고 왔더니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어쨋든 올 행사는 무사히 잘 넘겼다.

구정 때 다시 갖가지 에피소드를 연출하며 법썩을 떨게 될 것이다.

그래도 어머님께서 생존해 계시니 그나마 그 법썩이라도 떠는 것일 게다.

형님은 지금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님 돌아가시면 제사에도 각자 음식 해와서 하기로 해."

그야말로 탕이나 끓이고 기다리겠다는 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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