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댁의 삼사백포기나 하는 김장이 시작되었다.
대구 사는 네째며느리(맏며느리 못지 않은 살림꾼)가 놀토(학생들 노는 토요일)라고
대구 사는 세째며느리(네째며느리보다 두살 아래이고 대단한 뺀질이) 몫까지 두집 김장을 담그러 상경했다.
큰집에는 평소에도 먹을 것이 거의 없지만 누가 찾아가면 더 먹을 것이 없이 막막한 지경이 되는지라
바쁜 와중에도 큰일 하면서 먹는 것조차 부실할 시어머님과 동서가 걱정이 되어
갖가지 밑반찬과 육개장 끓일 준비를 하는 중에 형님(맏며느리이며 둘째며느리인 나보다 두살 아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나야~ 지금 바빠?"
"네, 왜요?"
왜 전화했는지 뻔히 알면서 되묻는다.
"으응~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에휴~ 또 시작이다.
결론은 반찬을 얼마나 해 올 것인지 차로 올 것인지 대중교통으로 올 것인지 그게 궁금했던 거다.
"차를 못 가져가므로 반찬도 변변히 못해 가요."
내 말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럼 오지마."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그렇다고 안 갈 나도 아니다.
들고 움직일 수 있을 최대양의 먹을거리를 양손에 들고
세번 갈아타야 하는 지하철을 포기하고 버스를 탔다.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각이라 차가 많이 밀렸다.
가는 도중에 형님으로부터 또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야? 오는 중이지?"
"네~ 서울대입구예요."
"그럼 오지 말고 도로 집으로 가라."
내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늦게 되니 오지 말라는 거다.
"아니~ 이 무거운 걸 도로 가지고 가라구요?"
그제서야 목소리가 확 바뀌면서
"헤헤~ 반찬 가지고 오는구나? 그럼 빨리 와."
차는 막히고 화장실은 가고 싶고 들고 가는 보따리는 점점 더 쳐지고...
시댁에 도착하니 막내 동서가 갓 돌지난 둘째아이와 네살된 큰애를 데리고 와 있었다.
저녁식사는 이미 마친 후였는데 도토리묵과 달래겉절이를 보더니 먹겠단다.
부실하게 먹은 저녁식사가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육개장을 끓이면서 형님 몰래 들은 이야기로는
형님이 가게 나가야 한다고 하는 걸 시어머님께서 만류를 하여 집에 주저앉기는 했지만
볼일 보러 한번 나갔다 오고 어슬렁거리기만 하여 김장에는 거의 도움이 못 되었다고 한다.
첫째며느리와 세째며느리는 어떤 일에고 거의 도움이 안 되는 사람에 속한다.
다음 주에 있는 시어머님 생신 문제도 그렇다.
형님은 밥과 미역국만 끓일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라고 했다.
난 불고기와 부침개 몇가지와 밑반찬을 하기로 하고
네째며느리는 잡채와 꾳게무침을 하게 하고
막내며느리에게는 나물 몇가지와 떡케잌을 맡겼다.
세째며느리는 불참한 자리였으므로
"그냥 제일 자신 있는 음식으로 한가지만 해오던가 말던가 하라고 해." 했다.
다음날 김장속을 넣는 자리에서 형님이
"다들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얘기해 봐~"
.
.
.
"그럼 되었네."
그리하여 이번주 토요일에 큰집에 모여 일박이일동안 또 북새통을 치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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