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령아~
내 무심을 부디 용서해 주렴.
살면서 문득문득 네 생각을 하곤 했는데
전화를 몇번 했어도 받지를 않아 이사라도 간 줄 알았었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포항까지 간 널 찾아가지 못해 네 소식을 친구를 통해서 오늘에야 들었단다.
아침부터 어쩐 일인지 맛보는 음식마다 떫고 이상해 오늘 내가 왜 이런가 했었지.
"나쁜 소식이 있어. 혜령이가 작년에 갔댄다. 암으로... 너무 늦게 발견해서 손도 못 써보고."
그렇게 허망하게 가기 전에 내게 전화라도 했더라면 가게 하루 접고라도 널 보러 갔을 게다.
거제도에까지 가서 방황하던 널 수소문해 찾아갔던 거 너도 알잖아.
안산에서 지점토선생님으로 살 때 먼길 오가며 일부러 네게 지점토 배우러 다닌 것도
그 때나 지금이나 한가한 내가 아니었지만 그런 사유로라도 널 보고 싶었던 거 넌 아니?
대학 시절 우리 조도 아닌 널 난 이무기 보듯 했었다.
너희 조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넌 학교에 결석을 밥 먹듯 하고
시험 보는 날에만 보여 친구들이 "너 아직도 학교 다녔니?" 하곤 했었지.
게다가 시험 보다 쓸 게 없으면 슬그머니 빠져나가 술한잔 하고 불콰하게 취해서야
다음 시험시간에 들어오곤 했었지.
네 대신 대리대답 해 주던 친구가 교수님께
"넌 시험 성적이 그게 뭐냐? 도데체 학교에 왜 다니는 거냐?" 고 망신을 당하기도 했었지.
내가 만든 점퍼스커트와 벽돌색 코듀로이자켓을 입고 찍은 사진이 너무 잘 나와
너더러 찾아달라고 맡겼던 사진값 술 마셔 없애고
내가 그 사진 찾으러 가니 하도 안 찾아가서 없앴다는 사진사 아저씨 말에 무지 화도 났었었다.
첫 결혼 실패하고 여섯살 연하 남편과 살 때
참 어이없는 광경이었지만 까마득한 동생뻘 되는 네 남편을 친구 신랑 대접해 주느라 난
마음고생도 많았었다.
결혼 전 그리 멋장이였던 네가 딸아이 포대기로 업고 양갈래로 머리 묶고 나하고
지점토재료 사러 갔을 때 그 재료상 점원이 내게 물었었다.
"저이 뭐 충격받은 일 있었나요?"
네 몰골은 거지중에서도 상거지 꼴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너 지점토 만드는 것보다 플래스틱 바구니 하나 앞에 놓고 육교에 엎드려 있는 게 수입이 낫겠다." 고 혹독한 핀잔도 했었지.
전공과목 원서를 사전 몇번 찾지도 않고 줄줄 읽어대던 모습이 엊그제 같건만...
나 사는 모습도 너와 별반 차이가 없다만...
네 능력과 노력은 간 데 없이 너무 험난하게 살다 갔구나.
지금 너 내가 널 추억하는 모습 보고 있지?
금방이라도 헤헤거리면서 전화해 줄 것만 같은 친구야...
너 착하게 열심히 살다 갔으니까 좋은 데 갔을 게다.
여기저기 떠돌지 말고 한곳에 얌전히 있으렴.
언젠가는 다시 만나질 거야.
우리 다시 만나면 좀 쉬엄쉬엄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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