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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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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에 돈내고 본 영화 한편


BY 그린플라워 2006-10-19

모처럼 쉬는 휴일.

아이들과 야외스케치에 나섰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놀다 지친 아이들에게 집으로 가라 하고 풍경수채화 두 장을 그렸다.

집에 돌아와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 소극장에서 '귀향' 안 볼래? 저녁 8시 30분에 하는데..."

애들 아빠는 오늘 회식이라 늦는다고 했지만 꼭 보려던 영화였으므로 보기로 했다.

모처럼 아이들에게 닭강정을 사주고 집을 나섰다.

일찌감치 가서 표를 사야 제일 앞자리를 면한다기에 서둘러 나오긴 했지만 너무 일렀다.

가게에 가서 대청소와 내일 해야할 식재료를 다듬고 곰국도 다시 끓여 두고 나서야

광화문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4호선과 6호선과 5호선으로 갈아타고 광화문역에 내렸다.

일곱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지만 벌써 어둑어둑 했다.

그리 일찍 갔어도 앞줄에서 세번째 좌석밖에 없단다.

일단 그거라도 어디냐라는 생각에 표를 받아쥐고 대기실에 앉았다.

공지영의 최근 베스트셀러를 다시 곱씹어가며 읽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고...

 

실직을 한 가장이 딸을 겁탈하고 그 딸에게 살해 당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친아버지가 아니라 그래도 된다며 겁탈을 했다는데...

그 주검을 완전범죄로 처리하기 위해 딸아이의 엄마는 안간힘을 쓰고,

여주인공(엄마)의 치매걸린 이모가 죽고 나서 죽은 줄만 알았던 여주인공 엄마의 등장으로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던 모녀는 화해를 한다.

 

모처럼 휴일에 귀한 시간을 내어 왕복 두시간도 더 걸리게 오가며 본 영화였지만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킬만큼 좋은 영화였다.

예술의 전당을 내집 드나들듯 드나들며 호사를 누리던 결혼 전 일들이

결혼 후에는 그런 일들이 내게 있기는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날들로 살아왔는데

오래 살다 보니 내 돈내고 영화보는 날도 오네... 싶었다.

결혼 후에는 공짜 영화 한편, 공짜 신파극 한편 본 게 내 문화생활의 전부였었다.

이번 일을 시발점으로 다시 옛날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림 그리는 것처럼 새삼스럽고 어설프겠지만 이내 익숙해지리라.

살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온데간데 없고 표정없고 낯선 얼굴만 남아 있는 게 너무 서글펐다.

이제부터는 되도록 나를 위한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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