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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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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섬(자루)에 쥐 덤벼들 듯


BY 그린플라워 2006-08-27

친정엄마는 입담이 아주 대단하신 분이시다.

겉보기에는 아주 조신하게 생기셔서 입도 한마디 안 떼실 것 같으신데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시면 시간가는 줄 모르신다.

오죽하면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입원해 계실 때도

병문안 온 사람들이 엄마 입담에 반해 돌아갈 생각들을 안 했었다.

 

교사인 동생 둘이 늘 그래왔듯이 방학이라고 몽골로 여행을 떠나고

두집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시골에서 친정엄마가 상경하셨다.

큰딸 가게가 걱정이 되셨는지 동생네 딸 둘을 데리고 가게로 오셨다.

산적해 있는 일거리들을 수습해 주시느라 가시지도 못하고 점심때가 되었다.

국수 좋아하시는 엄마는 어디 국수 맛있게 하는 집 없냐신다.

"내가 삶지요 뭐." 하니

"바쁜데 그냥 시켜 먹자."

그래도 그냥 삶았다. 나도 국수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7~8인분은 족히 되게 삶았는데

동생네 딸 둘이 두그릇씩 해치우고는

"이모, 더 없어요?" 한다.

게다가 우리 애 둘까지 왔다.

결국 난 반그릇도 못되는 국수로 점심을 떼우고 말았다.

 

동생네 아이들은 여자애들이라 반찬 만드는 거 거들기를 좋아한다.

오늘은 깻잎을 보더니 반색을 한다.

지들이 데친 깻잎 펴서 양념장 얹겠다는 게다.

둘이 하는 걸 보더니 우리 애들까지 합세해서 내가 두시간 이상 해야할 일을 쉽게 마쳐놓는다.

엄마는 그 광경을 보시더니

"메밀섬에 쥐 덤벼들 듯 해치웠네 그랴."

 

언젠가는 엄마의 어록을 만들어야겠다.

자주 쓰시는 말 중에

'언 송아지 똥싸듯 말은 잘 한다.'-언 송아지가 설사하듯 말이 유창하다는 것이다.

'얼음에 박을 민다.'-얼음판에 바가지를 밀면 얼마나 잘 미끄러지겠는가? 말로만 다 떼우려는 사람을 빗대어 하시는 말이다.

'장판에 물레다'-장이 선 정신없는 곳에서 물레질을 하겠다고 하는 것처럼 때와 장소를 못 가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내성장 웃모퉁이'-내성에 장이 선 곳의 윗쪽은 질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장꾼들이 서는데 너무 정신없이 늘어놓고 있을 때 좀 정리를 하라시는 말이다.

누가 손님이 오셨는데 이렇게 말하더란다.

"밀가루가 있으면 콩가루를 꿔다가 국수라도 해드릴 텐데 땔 장작도 떨어지고 없네요."-경상도 우리 고향에서는 국수를 할 때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서 국수를 만드는데 아무 것도 없는 집에 손님이 오시니 절박한 심정에서 한 말이리라.

'봉사 개천 나무라서 뭐하겠노'-자신이 못나서 그런 걸 상황탓 하지 말라는 말이다.

친정엄마가 하시는 일은 사사껀껀 생트집을 잡는 열등감 많은 주변인척들이 엄마가 미국여행을 하고 오시자 다들 모여서 수근거렸나 보다.

그 말에 발끈하신 엄마,

"아니 왜 나만 문밖을 나서면 동네 개들이 다 짖는 거야?"

지들은 온갖 곳을 다 쏘다니면서도 엄마가 뭐 한 건 탈을 잡으니 탈 잡은 사람들을 싸잡아서 개로 빗대신 것이다.

일일히 다 열거를 할 수도 없을 정도인데 차차 정리를 해서 어록을 만들어 둘 생각이다.

최근에 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말

'가장 큰 복수는 용서다. 난 다 용서했다.'

이 한마디로 그간 온갖 모함을 다 한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셨다.

 

48년만에 귀향하신 우리 부모님께서는 아주 행복한 생활을 하시고 계신다.

엄마를 거의 이무기화 했던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과 정겹게 사시고 계시는데

옆집 할머니께서 하루는 그러시더란다.

"난 00어매가 아주 고약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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