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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어치만 사가는 손님


BY 그린플라워 2006-08-27

우리 가게 반찬은 반조리식품이나 완제품을 파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돈이 되건 안 되건 시간이나 인건비가 고려되지 않은 채로

그냥 집에서 해먹는 방법을 고수한 반찬들이 대부분이다.

되도록 원재료를 구입하여 일일히 까고 채 썰고 다듬고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전쟁 치르듯 북새통을 떨어 봤자 완제품으로 되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만든 반찬들이므로 손님들에게 천원어치부터 파는데

혼자 사시는 분들께는 오백원어치씩 팔기도 하고 천원짜리 한 접시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 담아드리기도 한다.

혹 단골손님이 많은 양을 사거나 여러 가지를 사려고 하면

"지금 배 많이 고프세요? 아님 집에 누구 손님 오시나요?"

"손님은 안 오는데 제가 먹으려구요."

"그럼 이 반찬과 이 반찬은 오늘은 가져가시지 마시구요, 이 반찬은 양이 적은 걸로 가져가세요."

"또 시작이시다. 사려는 반찬 못 사게 하는 데는 여기밖에 없다니까..."

어떤 손님은 그러기도 한다.

"파는 게 그리 아까우세요? 왜 사겠다는데 말리세요? ㅎㅎ"

말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만든 양이 적은데 단골손님들이 골고루 나눠 가져야 하기도 하고, 혹 우리 반찬이 어느 집에 가서 남아서 쓰레기로 버려질까 염려되어서다.

 

어떤 이는

"이 반찬가게 많이 알려야겠어요. 엄마가 해주신 반찬처럼 먹으면 편해요."

그럼 나는 또 말린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떼어다 파는 물건이라면 손님이 많아지는 게 좋겠지만 제 손 안 거치면 안되는 물건들이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그냥 먹던 사람들끼리나 나눠 먹자구요."

 

가게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반찬마다 다 맛보고 마음에 들면 사가게 했었는데

이제는 90% 이상이 단골손님들이 드나들거나 소개로 온 사람들이므로 시식이 필요 없어졌다.

천원어치씩 포장해 둔 반찬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마지막 남은 이천원짜리 포장된 반찬을 반만 팔라고 하는 손님도 더러 있는데,

대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양이 많아서 남길 것 같아 반 달라고 하는 손님도 있고

반 달라고 하면 반 주다가 손이 부끄러워 삼분의 이 주고 나머지는 내가 먹거나 그냥 반값에 주기도 하므로 그걸 악용하는 손님도 있다.

어떤 남자손님은 초등학교 사학년 쯤 된 남자아이를 데리고 와서 나물 종류별로 다 담아서

천원어치만 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 아이가 먹을 만한 계란말이나 메추리알 장조림, 멸치볶음 같은 건 못본 체 외면하면서...

그 손님 신사복 말끔하게 차려 입고 지갑 열어 돈 꺼내는 거 보면 만원짜리가 수두룩하다.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에게 건강식으로 먹이려고 그러는 사람은 아닌 듯 싶다.

 

요즘 새 단골손님이 생겼다.

어떤 건장하게 생긴 서른쯤 되는 남자손님이 와서 반찬마다 가격을 다 물어보고 다시 오겠다고 하고 갔다.

도데체 얼마나 많이 살 건데 저러는가 싶었는데

그 다음날부터 와서는 날마다 천원어치만 반찬을 사 가곤 한다.

그 손님 또한 이천원어치 포장된 걸 굳이 천원어치만 달라고 하여 더러 삼분의 이를 천원에 가지고 가거나 그냥 반값에 주기도 하곤 했는데...

 

요즘은 식성이 다양해져서 안 먹어본 반찬으로 취향이 바뀌었다.

"아줌마, 돈까스 천원어치 주세요."

"돈까스는 오천원어치씩 포장이 되어 나가기 때문에 천원어치는 못 팔아요."

오늘의 메뉴판을 쭉 살펴보더니.

"그럼 닭도리탕 천원어치 주세요."

이 부분에 이르자 인내심에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닭도리탕은 한마리 통채로 포장해서 팔기 때문에 만원인데요."

그래도 그 청년 참 꿋꿋하다.

"그럼 이천원어치만 주세요."

평소 가격의 두배를 내겠다고 하는데도 난 줄 수가 없다.

"이천원어치 사시면 별로 드실 게 없어요. 다른 반찬으로 하면 안될까요?"

"그럼 돼지고기묵은지볶음으로 이천원어치 주세요."

드디어 결정된 반찬을 담으려고 하니.

"많이 주세요." 한다.

삼천원어치 담아서 이천원 받고 보냈다.

 

난 저소득층자녀들 방과후교실에 월정후원금도 내고 있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돈에 상관없이 넉넉히 챙겨주는 편인데

상대가 너무 짠순이 짠돌이로 나오면 은근히 속이 상한다.

그렇다고 맞짱 뜰 수도 없고 안 판다고 할 수도 없고...

 

장사를 하다보면 별의별 손님을 다 만나게 된다.

계란말이나 부침개를 하고 있을 때

굳이 포장된 반찬을 집에 가서 포장용기 풀고 재활용하는 거 귀찮다고 풀어서 비닐봉지에 다시 담아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다.

포장이 안 되어 있는 반찬은 그리 해 주기가 쉽지만 포장되어 있는 마지막 반찬을 그리 해 달라고 번번히 요구를 하는 데는 화가 치민다.

아무리 단골손님이지만 내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다시는 안 왔으면 싶기도 하다.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다 그런 손님이 우리 가게에 있으면 그 손님 갈 때까지 안 들어가고 버틴 적도 있다.

 

우리 반찬이 짜다고 제발 싱겁게 해 달라고 하는 저염식환자도 더러 있고, 자기 애들은 후추 안 먹는다고 모든 음식에서 후추를 빼달라고 요구하는 손님도 있다.

주문요리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잡채 이천원어치 사 가면서 그런 요구를 하면 황당하다.

 

우리 가게 곰국을 드시고 원기를 회복하셨다는 팔순의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데,

성격이 얼마나 별나신지 파출부도 얼마 못 견디고 다들 안 올 정도다.

곰국 한그릇도 못 들고 가신다고 전화로 배달을 해달라고 하시거나, 가게에 오셔도 이따 집으로 가져다 달라고 하신다.

배달을 가면 문에 세워 놓고 한시간 여 푸념을 하신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우시겠나 싶어 참고 들어드리다 보면 다리가 아파 온다.

 

이년여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이제는 손님들이 다 식구인 셈이다.

이 즈음에는 이 반찬이 먹고 싶을 거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단골손님이 내 한계를 벗어나게 늘어나자 차즘 발길을 끊는 오랜 단골손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반찬들이 먼저 본 사람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특별히 몇개 빼 놓기도 하지만 다 그럴 수는 없다.

각자 찾는 반찬이 없으면 실망하고 가는데 괜히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

마진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도우미들을 마냥 늘려 쓸 수도 없고...

 

무슨 묘안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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