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덟시가 다 되도록 그저께 식재료상이 강제로 떠넘기고 간 고구마줄기를 까느라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두시간째 고행을 하는 중이었다.
"뭐하니? 일손 놓고 전기구이통닭 좀 먹으렴."
엄마와 동생 신랑, 동생까지 세사람이 들이닥친다.
까던 고구마줄기를 보시더니
"제발 이런 것좀 하지 말라니까. 그 반찬 없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니면서 왜 하는 거야?"
'에휴~ 난 이제 죽었다.'
그 때부터 동생신랑은 저녁 먹으러 가고 엄마와 동생은 가게를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한다.
"아니, 이 물건이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야? 이건 여기 꼭 있어야 되는 거야?"
하면서 일손보다 입이 더 분주하게 움직여 내 귀는 시끄럽다 못해 공포에 떨게 된다.
"장사할 재목도 못 되는 게 장사를 하니 이 모양이지. 어디 광고라도 내어 가게 처분 좀 해라."
돈도 잘 못 벌면서 늘 일에 파묻혀 사는 큰딸이 불쌍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한 엄마의 말씀이시다.
엄마와 동생이 가게를 들쑤셔내면서 소독약까지 착착 뿌려대는 걸 보면서
난 속은 부글부글하면서도 겉은 천하태평인 얼굴로 전기구이통닭을 열심히 먹는다.
그러나 한마디 한다.
"엄마, 그만 좀 하세요. 닭고기가 체할 것 같아."
교사인 동생과 엄마는 툭하면 출두해서 가뜩이나 정신없이 사는 나를 더 정신없게 한다.
평일에는 저녁무렵에 오지만 주말이나 방학에는 시도때도 없이 와서 잔소리를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동생 없다고 하지만 오는 게 반갑지만은 않다.
온다고 미리 연락이라도 하면 대충 수습이라도 해 두련만...
어떤 날은 작심하고 구석구석 청소를 해 두고 있는데 그런 날은 거의 오지 않고
제일 바쁜날 들이닥쳐서 곤욕을 치르게 한다.
한바탕 난리를 친 후에는 일손 많이 가는 식재료를 다듬어 주거나 맛있는 걸 사다 주기도 하지만 그저 조용히 도와주면 어디 덧나나?
나도 정리정돈 잘하는 도우미 두고 나는 재주만 부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두 도우미가 한꺼번에 사정상 못나온 날이라 가게 상태는 더 심각한 터였다.
그 덕분에 한바가지만 먹으면 될 잔소리를 두바가지쯤 먹어 지금 포화상태다.
하루빨리 정리정돈 잘하는 도우미를 구하던지 가게를 처분하던지 조처를 강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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