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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통행료 면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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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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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BY 그린플라워 2006-08-27

휴일이라 평소보다 손님이 뜸하여 바빠서 손도 못 대었던 식재료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핸드폰에 엄마 휴대전화번호가 뜬다.
전화 알레르기가 심해 꼭 해야할 통화가 아니면 안부전화정도는 거의 안하고 사는지라
"어쩐 일이셔요?"하니
"신세계백화점에 쇼핑가려고 하는데 안 바쁘면 잠깐 가게 닫고 같이 가자."

엄마는 어렵게 사는 맏딸이 늘 마음에 걸리시는지 무슨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데리고 다니시려고 하신다.

'이게 왠 떡이야? 동생차 타고 오가면 시간도 단축되고 셋이 다니면 필요없는 물건도 안 사게 될 거구...'
일단 따라나섰다.
오랫만에 가보는 백화점은 여전히 붐볐다.
영 하나가 빠졌으면 싶은 가격이 영~ 눈에 거슬렸지만
유명브랜드 제품만 구입하는 엄마와 동생을 그냥 따라다녔다.
난 선듯 못 사는 가격대의 옷을 보면서 동생은 연신,
"우와, 이 옷 엄청 싸다. 언니 마음에 들면 입어봐."
'그래 까짓거 이제는 나도 그 정도의 옷은 살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보니 가볍고 시원한 게 벗기가 싫다.
"나 이 옷 살래." 하니
"언니처럼 옷 쉽게 사면 한시간에 몇벌도 사겠다. 마음에 들면 사." 하고 카드결제를 한다.
그 옷을 입은 채로 그 매장을 나오려니까 동생이 어디 하자는 없는지 요모조모 살펴보다가
"언니 팔 들어봐. 에이 팔 쪽의 지퍼부분이 좀 파였다. 고쳐 입어." 한다.
점원은 수선비는 따로 내셔야 한다고 하니 동생이 다른 옷으로 입어 보란다.
다른 옷을 입어봤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환불하는 거 영 못하는 나로서는
"이 옷도 괜찮네. 이 옷으로 할래." 했더니
동생이 먼저 옷처럼 마음에 쏙 들지 않으면 환불하는 게 낫다고 벗으란다.
뒷일은 동생에게 맡기고 얼른 그 매장을 나와버렸다.
전 층을 다 돌아다닌 끝에 아까 옷보다 가격도 저렴하면서도 훨씬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입어보니 아사면이라 날개처럼 가볍고 시원하다.
동생는 거저라면서 다른 스타일로 한벌 더 사라고 했지만
원피스 차려입고 다닐 일이 교회가는 일밖에 없으므로 그냥 한벌만 샀다.
옷이 얼마나 시원한지 그 옷을 입은 채로 나머지 쇼핑을 했다.
마지막으로 지하매장 식품부로 가서 엄마와 동생은 오만원짜리 굴비를 한두름씩 샀다.
나더러도 사라고 했지만
"그거 구워 먹을 시간도 없구, 넣어둘 냉동실도 마땅찮고 안 살래."
난 그냥 나왔다.
이른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지만 가게가 걱정된다고 가자 했다.
가게에 오니 상가 사람들이 이제껏 입은 옷 중에 가장 예쁜 옷 사 입었다고 착복식 하란다.
입은 옷도 일하기에는 불편하고 손님도 뜸하고 해서 일찌감치 가게를 나서려고
냉장쇼케이스 조명을 끄려고 하는 순간 오마나~~~
그제서야 돈까스 양념에 재워둔 게 눈에 띄었다.
오늘중으로 빵가루 안 입히면 맛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 여유도 없이 그 꼬까옷을 입은 채로 돈까스 다섯근을 완성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손님들마다 평소 옷차림이 아님을 보고
"아니, 꽃단장하고 그 일을 하면 어째?" 하거나
"옷이 날개 맞네요. 전혀 딴 분 같아요."
반찬 팔랴, 돈까스 만들랴 얼마나 정신없이 일을 했던지 땀으로 샤워를 했다.
이럴 땐 건망증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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