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가게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건만 벌써 이년여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어리버리하기는 마찬가지다.
여느 반찬가게처럼 체인점이라 반조리식품이 오는 것도 아니고,
밑반찬 위주로 한꺼번에 왕창 만들어 놓고 팔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닌,
오로지 그날그날 즉석에서 만들어서 파는 반찬들이라 날마다 북새통이다.
이제는 단골손님도 꽤 되어 각각의 손님들이 먹었던 음식들을 찾아오므로
더러 품절된 음식으로 인해 실망하고 돌아가는 수도 있다.
두 도우미와 하루종일 뭔가 열심히 만들기는 하는데 늘 부족한 품목이 있게 마련...
요일별로 계획된 식단으로 운영을 해볼까 하기도 했지만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이를 테면 비오는 날에는 물오징어 듬뿍 썰어넣고 갖은 야채를 넣은 푸짐한 부침개가 인기가 있고,
곰국 마지막으로 끓이는 날에는 사태를 푹 고아 섞어 곰탕을 만들어야 잘 팔린다.
잡채와 계란말이 각종 나물은 빠지면 안 되고, 사흘에 한번 정도는 생선조림도 해야 한다.
식재료는 그 전날밤에 가져다 주는 재료상에게 주문을 하는데 늘 주문한 식재료 외에 그날그날 싸게 온 재료나
식재료상이 못 팔아서 걱정하는 재료가 마음 약한 내게 떨어지기 다반사다.
도우미들이 그러한 나를 보고 늘 말린다.
"오늘은 절대로 떠맡기는 재료는 사지 마세요."
마음을 독하게 먹어보기도 하지만
식재료상이 "도데체 장사가 너무 안 되어서 못해 먹겠다. 업종전환을 하던지 해야지 원." 그런 류의 말만 하면
"내려놓으세요.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봐야지 뭐." 하곤 한다.
이따금 "오늘은 도저히 더 못 사요." 하고 거절해서 보내면 마음은 불편하지만 도우미들은
"잘하셨어요. 오늘처럼 그렇게만 하세요." 한다.
게다가 재료들도 거의 박스나 관 단위로 오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쓰지도 못하는 양이 대부분이라
대형냉장고 속은 남은 식재료들로 꽉 차 있기 일수이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에휴~ 이 속에 있는 것들만 꺼내어 만들어도 삼사일은 버티겠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식재료나 좀 색다른 반찬을 원하는 단골손님들을 위해 또 주문을 더하게 된다.
오늘은 그림 그리러 가는 날이라 두 도우미들이 판매까지 맡아야 하므로 식재료 주문을 자제했는데
어제 통배추 여섯포기를 예정에도 없이 맡고 말았다. 우리 가게 김치가 아니면 안 먹는 별난 단골손님을 위해
포기김치를 담궈줘야 하는데 토요일 한가한 날에 하려고 했지만 떡 본 김에 제사 모신다고 배추 본 김에 산 것이다.
어제는 손댈 엄두도 못내어 방치하고 오늘 점심식사 후에서야 절이기를 시작했다.
배추속 양념꺼리도 준비하고 물도 못 마실 정도로 부지런을 떨었지만 결국 속도 못 넣고 말았다.
그렇다고 다 퇴근한 상가에 남아 혼자 만들기도 무섭고 하여 절여 씻은 배추는 배추대로 속은 속대로
비좁은 냉장고 속을 이리저리 정리해서 간신히 집어 넣고 무거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내일 일찍 나가서 김치부터 해야지.
그래도 오늘은 메추리알 까는 것이나 장조림용 고기 찢는 일, 버섯부침개용 버섯찢기 등이 없어 다행이다.
내일을 위해 일찌감치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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