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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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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틀니


BY 그린플라워 2006-08-26

친정에 갔다가 물에 담겨있는 엄마의 부분틀니를 보니...

유난히 청결하시고 뭐든 가꾸는 걸 좋아하시는 엄마가 치아관리를 소홀히 하셨을 리가 만무하건만

우리 오남매를 낳고 기르시다보니 멀쩡한 치아를 간직하시지 못하셔서 틀니를 하신 게다.




어머니...

자식을 낳고 길러 보니 엄마의 깊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 같다.

일남 사녀인 우리 네자매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여인을 꼽으라면 서슴치 않고

'엄마'라고 한다.


우리 엄마는 지극히 평범하신 것 같으면서도 어디서고 조용히 두각을 나타내시는 그런 분이신데,

외양은 아주 얌전하시고 잔잔한 미소가 늘 번지는 듯한 온화하신 분이시지만

일단 일과 부딪히게 되면 무서운 괴력을 발휘하는 그런 외유내강하신 분이시다.



시어머님과 시누이, 사촌시누이까지 함께 사시면서 할머니 앞에서는 절대 큰소리를 내지 않으셨다.

더러 우리가 말썽을 부려도 눈을 흘기시는 것이 고작이었다가

할머니가 시골 가신 후에 오남매를 모아놓고 한꺼번에 매를 드시고 '타작'을 하셨었다.

시어머님 앞에서 맨발을 보일 수 없다고 국민학교 육학년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복을 입으시고, 한여름에도 버선을 주무시기 전까지는 벗지를 않으셨었다.

학교에 일일교사로 오시는 날이거나, 우리들의 소풍을 따라가시는 날이나 되어야 양장을 하셨었는데

그 양장도 한여름에도 팔꿈치를 드러내지 않은 복장이셨었다.

그런 조신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윷판이 벌어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엄마의 '끼'를 맘껏

발휘하여 모인 사람들을 기함을 하게 하시곤 했었는데...

한복을 입으시고 버선까지 갖춰 신은 이조여인 같은 분이 일어서서 발까지 구르시면서 '모야~!'하고

외치시면 모가 나오고 '개야~!'하면 개가 나오던 게 너무나 신기했었다.

흡사 굿판을 보는 듯 신명나게 노시는 거였다.

고집도 대단하셔서 왠만하면 고집을 안 부리시지만 맘 먹은 일은 그 누구도 꺾지를 못했다.



심장병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가실 날만 기다리시던 중에 아버지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셔서

완치를 하게 되셨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아버지의 맘 고생도 대단하셨었다.

안가겠다고 떼를 쓰는 엄마를 업어서 교회에 데려다 놓으면 기도하는 중에 기다시피 해서

다시 집으로 오시곤 하셨었단다. 어차피 죽을 거 죽어서 조상님들을 어찌 뵙냐는 게 엄마의 변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체험하신 후로는 지금까지 열심히 교회봉사를 하시고 계신다.



오남매에게 한번도 '공부해라'하고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었지만,

감리교회에서 주최하는 육년간 이수하는 성경공부대회에서

육년 동안 내리 일등을 하셔서는 무언의 압력을 주시고 주변 사람들을 질리게 하시기도 하셨다.



종가집이라 교회에 다니시면서도 제사를 열네위나 모시고 있었는데,

대소가 사람들이 어떨 때는 남자 제관만 스무분 가까이 오시고

거기에 딸린 가족들까지 오시면 그야말로 제사가 아니라 무슨 큰 행사를 치르듯 했었으므로

식기를 사도 열죽(백개), 수저는 한단(백개)을 사야만 했었다.

제삿날이면 평소 손에 물을 거의 안 묻히고 살던 나까지도 애들 보모노릇에다,

마당에 커다란 다라이를 몇개씩 꺼내 놓고 설겆이에 동참하곤 했었었다.

그러나 그런 큰일도 별로 부산스럽지도 않게 조용히 뚝딱 해치우곤 하셨었다.

자그마한 키에 야윈 몸으로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참으로 신기했었다.

거의 칠순이신 요즈음도 네 딸들의 집을 수시로 드나드시면서 손 많이 가는 음식을 해주시거나

함께 여행을 다니시곤 하시는데 딸네 집에 오셔서도 새벽기도는 거의 안 빠지고 다니신다.

그런 엄마를 보면 우리도 저리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곤 한다.

'엄마처럼 살야야지..'하는게 희망사항이지만 어림 없을 것같다.



지금도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드시고 비가 오면 비내리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는 엄마는

글도 좀 쓰시는데, 시를 지어서 지역신문에 내시기도 하시고 해외여행을 다녀오시면 기행문으로

남기시기도 하신다. 일기도 꽤 많은 걸로 아는데 좀체로 안 보여주신다.

우리들이 비가 내리는데도 그냥 방안에서 뒹굴거리고 있으면

"얘들아,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도 그렇게 무심하게 뒹굴거리게 되니?"하시고

눈이 내리면 아이들처럼 좋아하시면서 손주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어 두신다.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나 많은 일화가 떠오르지만 난 표현력이 부족해서 일일히 기록할 수가 없다.

다행히 동생들이 문장력이 좋은 편이라 막내여동생이나 남동생이 엄마의 회고록을 쓴다면

아주 곰살맞게 상세히 써내지 싶다. 엄마의 칠순에는 엄마의 글들을 모으고 자녀들이 엄마에

대한 생각을 몇자씩 써서 기념문집을 만들어드리려고 했는데 엄마는 극구 사양하셨다.

더 늦기 전에 오남매가 엄마의 고집을 한번 꺾어봐야겠다.

그냥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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