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택시를 타고 파란지붕으로 돌아오는동안 많은 생각들이 나를 또 괴롭혔다.
사람을 만나는것이 두려운 나는 이런 많은 생각들이 얼마나 나 자신을 무력하고 우울하게 만드는지 잘 알지 못한다.
택시의 창문을 조금 내리자 새벽에만 느낄수 있는 시원하고 싸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매만지는듯 했다.
가끔은 연락도 소식도 모르는 아빠생각이 나고,
또 가끔은 내가 어릴적 병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아픈얼굴이 생각나고,
그리고, 파란지붕으로아빠와 함께 온 그 여자의 처음 모습도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런 모든것을 지켜본 내모습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테잎을 좀 틀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하시라고 하자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테잎을 틀었다.
그리고는
"교회 다니시나요?"
아주 부드럽게 물어왔다.
순간 기분이 좀 그랬다.
"아뇨, 절에 다녀요!"
나도 모르게 입에 붙어다니던 말이 튀어나왔다.
난 종교에 그다지 가치를 두진 않는다.
다만 내가 어느곳을 가던지 간에 마음이 편하면 좋은곳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니 뭐니 하는 그런 복잡한 것들을 떠나서
절에 가면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바람에 풍경소리도 좋고, 조용한 목탁소리도 좋다.
그리고 산속에서 느낄수 있는 나무냄새가 많이 좋았다.
아저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한참만에 말을 꺼냈다.
"교회 다니셔야 천국 간답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대꾸를 했다가는 집에 도착할때까지 나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되는 설교를 들어랴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종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이런식의 설교나 권유는 너무 싫다.
내가 아무말을 하지 않자 포기한듯 테잎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아주 어릴적에 우리 할머니는 절에 다니시는 분이셨다.
그렇게 광적으로 다니시지는 않으셨지만 무슨날이 되면 꼭 절에 가시곤 했다.
근데 할머니는 나이가 한살씩 더 많아지면서 몸이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약으로도 아픔이 가시지 않자 종교를 바꾸어버렸다.
집에 놀러오시는 할머니 친구분이 교회에 다니거나 기도를 하면 아픈것이 없어진다고 한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십자가모양을 방 곳곳에 붙여놓으셨는데 하느님도 나이는 못당하셨는지
그렇게 하시고도 1년 반만에 돌아가셨다.
나도 할머니처럼 내가 힘들고 아파지면 종교를 찾을지도 모른다.
나중은 알 수 없으니까.......
창밖을 쳐다보니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는 간판 불빛들만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택시창문을 다 내리고 의자에 기댄채 눈을 감았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물위를 걷는듯한 나른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밤 새도록 가만히 앉아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벽바람이 내 머리카락과 내 얼굴과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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