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휴대전화벨이 서글프게 울어대기 시작한다.
'천일동안 힘들었었나요....혹시 내가....'
슬픈노래들의 가사를 잘 음미하다보면 괜히 서글픈 눈물이 날때가 많다.
전화기를 들여다보니 발신자가 미진이로 찍혀있었다.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안받으면 일부러 안받는것인지, 정말 바쁜일로 못받는것인지를 너무나도 잘안다.
그래서 미진이의 전화는 내가 피할수가 없다.
영원히 안보고 살 수 없는 친구이기 때문에도 그럴것이다.
일부러 안받고나면 나중에 돌아오는것이라고는 그 조그만 입에서 나오는 걸쭉한 욕들이 다이기때문에 .......
"여보세요..?? 야, 대답을 안하냐??
그럼 그냥 들어! 너 지금 어딘데..... 음, 집이겠네.
지금 나랑 같이좀 가자 병원에
아니, 서영이 이년이 또 ....
빨리나와 만나서 가보게....끊는다."
혼자할 말 다하고 끊어버린 미진이,
일년에 꼭 두번씩 일을 치는 서영이가 또
일을 쳤나보다.
미진이는 이런 서영이를 많이 걱정한다.
나랑 있을땐 아니 서영이랑 셋이서 만나도 항상 서영이 욕을한다.
"나쁜년, 정신못차릴년, 미친년......
그러다가도 서영이가 일만내면 동네반장처럼 열심히 뛰어다닌다.
나는 그러질 않는다.
서영이 만나면 욕도 하지 않고 약간의 안부와 농담만 한다.
그리고 서영이가 일을 내면 "또??" 하고 만다.
나는 미진이가 생각하는것만큼 서영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도 미진이처럼 서영이 걱정을 많이 해서 뛰어다녔다.
하지만 고질병이다.
서영이는 사고뭉치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지만 미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진이가 서영이를 대변할때 나에게 하는말은 항상 외로워서일거야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다.
외롭다고 외롭고 힘들고 불우하게 살았다고 아니, 산다고 항상 사고를 칠 수는 없는일이다.
서영이에 관한 한 나와 미진이의 생각은 극과극을 달렸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지갑을 들고 방을 나왔다.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컷는지 문을 열고 그여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말없이 대문을 열자
뭐라고 하는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그여자를 쳐다보자
애처러운 눈빛이 그여자의 눈가에 묻어있었다.
"나갔다 올께요"
이상한 일이었다.
그여자의 눈빛을보자 그냥 말이 튀어나왔다.
대문을 닫고 나오면서 후회했다.
보던말던 대문을 세게 닫고 나오는것데.....거기다 존댓말까지...
내가한 그 한마디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또 무슨 사고친건데...."
병원앞에서 미진이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야, 너는 친구가 다쳤는데....걱정도 안되냐?"
도리어 미진이가 나에게 더 큰소리다.
아무말하지 않고 병원입구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성격좋은 미진이가 나를 플라스틱으로 만든 파란 병원의자에 끌어다 앉혔다.
한숨을 내쉬고는 나에게 엄포를 놓듯이 말했다.
"너, 딴말 하지마. 그리고 그냥 괜챦냐고만 물어봐.
그리고 좀 그 인상좀펴고..... 아, 또 ...
아니다 그냥 인상펴고 암말도 하지마라. 나만 말할테니까....
짜증도 내지마...."
완전히 명령이고 엄포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예전에 서영이가 사고쳐서 병원에 있었을때
그때도 나랑 미진이가 갔었는데.....어찌나 한심하던지 내가 한마디 했더니
그와중에도 부르르해서는 나에게 욕지꺼리를 해대던 서영이와 한바탕 크게 싸운적이 있었다.
미진이가 나랑 서영이 떼어놓느라 힘들었었다.
병원문을 미진이가 살짝 열어보자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서영이가 보였다.
한쪽팔에는 링겔을 맞기위해 꽂아논 주사바늘이 다른 한쪽 팔에는
하얀붕대가 손목에 둘둘 감겨있었다.
"그렇지, 또야
지겹지도 않아. 저년은... 맨날 같은데다...."
내가 짜증내며 얘길하자 미진이가 조용하라는 시늉을 낸다.
"서영아! 너 뭐야.... 어떡해..."
미진이가 이내 눈물을 글썽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괜챦아, 한두번이냐....왜 울고 난리야 쪽팔리게...."
입은 살았다.
여전히 서영이는 입만 살은것 같다.
내가 입을 샐쭉거리자 너는 왜왔냐는 지독한 눈빛으로 나를 째려봤다.
"너, 진짜 야! 인서영...."
꾹 참았다.
미진이가 내손을 너무 꽉 잡았기에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일 퇴원할꺼야. 병원비도 없는데.....미진아 나 내일 너네 집에서 한 일주일만 있자.... 그리고 나 그냥 청평에 엄마한테 갈라구...."
청평이면 서영이의 낳아준 엄마가 계신곳이다.
서영이는 낳아준 엄마가 한분, 길러준 엄마가 세분이다.
하긴 미진이가 서영이가 불쌍하다고 노래를 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명의 새엄마도 버거운데.....
세명의 새엄마라..... 엄마복도 지지리도 없는년......
그러니 외롭다는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 못해서 맨날 사고만 치는......
플라스틱의자에 앉아서 자판기 커피한잔을 마시고 있으니 미진이가 힘든 표정으로 걸어와서는 다짜고짜 하는말이
서영이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울먹였다.
"왜 또 남자때문에 그은거래?"
내가 생각해도 아주 기분나쁜 말투였다.
이내 후회했지만, 그냥 내버려뒀다.
"너는 그 말투좀 버려라, 싸움못해서 죽은귀신이 붙었냐? 왜그래 도대체.....
그보다 서영이 어떡해, 천하에 죽일놈, 그놈이 서영이를....."
또 남자때문이란다.
"야,미진 너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서영이가 또 남자때문에
그은거라면 그남자만 죽일놈이 아니라 서영이도 죽일년이야. 서영이만 감싸고 돌 일이 아닌데...너때문에 더하쟎아. 그거 모르겠냐?"
서영이때문에 미진이와 또 싸우게 됐다.
집에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미진이를 생각하고 그런 미진이가 불쌍하다고하는 서영이를 생각했다.
정신없는 년......
서영이는 지금까지 자살한다고 팔을 그은게 세번째다.
그것도 다 남자때문이다.
서영이는 살아온 환경때문인지 자기를 조금이라도 좋아한다고 덤벼드는 남자가 있으면 어쩔줄을 모른다.
미진이는 어려서부터 정을 못받고 자라서 정에 굶주려서 그렇다고하고
나는 서영이의 모자라고 철없고 생각없는 행동이 더 문제고 자신을 학대하는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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