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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나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이내 아줌마들의 수다속으로 깊이 빠지는듯 했다.
미용실 한 귀퉁이에 있는 냉장고에 가서 찬물을 꺼내서 컵에 쪼르륵 따랐다.
한 아줌마가 물소리나는 쪽을 쳐다보더니
"나도 물 좀 줘..."한다.
물병을 가지고 가서 아줌마들의 컵에 한 잔씩 다 따랐다.
그러자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또 수다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내말이 .... 그여편네 너무 순해 빠져가지고 ....쯧쯧"
한 아줌마가 열을 올리며 혀를 찼다.
"그거 여편네 잘못이야. 아무리 십년넘게 살아도 마누라가 물에 물탄듯하는데
어느남편이 좋아라 하느냐고... 좀 바가지도 긁고 해야지.."
한 아줌마가 또 혀를 찬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바람난 남편과 아무 힘없는 아내의 얘기인듯 했다.
그리고 바람난 남편의 여자가 등장했다.
"다 떠나서 그 년이 제일 나쁜년이라니까, 그여편네가 그년 혼자 산다고 얼마나 잘해줬는데...
반찬만들어줘, 집에 오라그래서 밥먹여줘, 친동생모냥으로 잘해줬는데,...
바람날때가 없어서 그언니 남편을...쯧쯧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나쁜년이라니까."
그 나쁜년.....이 친하게 지내던 언니의 남편과 바람이 났단다....
그 나쁜년은 왜 그랬을까?
얘기를 듣고 있자니 누구 한사람의 잘못이 아닌 세사람 공동의 잘못으로 느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듯 하더니 이내 또 다른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하긴 그년이 제일 나쁘지, 설사 그 남편이 치근덕대도 그 언니 생각해서 지가 선을 그었어야지, 좀 잘해준다고 허벌레 좋아라 업어지면 싫어라 할 남자가 어닜누....그 순진해 빠진 여편네만 바보됐지 뭐..."
이로써 결론이 내려진듯 했는지
아줌마들의 흥분된 수다는 잠시 힘을 잃었다.
그제서야 얘기 듣느라 정신 없던 언니는
나를 쳐다보면서 얼굴을 찡긋했다.
장사가 안되서 아줌마들의 수다방으로 전락한 언니의 미용실을 보니 처음
맘먹은대로 보험얘기가 입안에서만 돌뿐 밖으로 튀어나오질 않았다.
"요즘은 결혼해도 맘편히 못사는것 같다. 아줌마들 얘기들으면 겁 나.
바람안피는 남자들이 없네....."
언니는 아줌마들의 수다로 결혼생활을 엿보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도 깨지고 결혼이라는것에 대해서 겁도 나는듯이 말했다.
왠지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난 그래도 좋은사람있으면 꼭 같이 한 번 살아보고 싶기는한데......"
작은 목소리롤 중얼거렸다.
그게 다 무슨 소용있냐는듯한 언니의 표정이 슬프게 보였다.
한참동안을 별다른 주제없이 이얘기, 저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뜬금없이 언니가 물었다.
"넌 바람피고 너한테 자상한 남자가 좋을것 같니?
아니면 바람은 안 피지만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남자가 좋을것 같니?"
참 희안한 물음이다.
아니 어쩌면 현실일지도 모른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일까?
바람 안피고 자상한 남자가 좋지......그걸 말이라고.....
그치만 그런사람이 많을까?
언니네 미용실에 있으면 다 바람피는 남자들 얘기 뿐인데....
"글쎄...."
애매한 문제였다.
그치만 바람피는걸 뻔히 알고서는 남편얼굴을 마주보고 싶지는 않을것 같다.
아무리 자상해도......
그떄 미용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50대의 중년아줌마가 머리에 보자기를 둘러쓰고 들어왔다.
파마 말아놓은거 풀 시간인 모양이었다.
미용실 문을 나서자 전화가 기다렸다는 울어댄다.
발신자표시가 찍힌걸보니 아침부터 잔소리해대던 지점장이다.
받을까말까 30초간 고민하다가 받았다.
혹시 한건했나하는 기대감이 묻어나는 지점장의 나긋한 목소리다.
"저, 오늘 아무것도 없어요. 날이 너무 더워서 아무도 보험얘기를 들으려고 안하네....지점 안들어가고 그냥 퇴근할께요. 내일 뵙겠습니다......"
얼른 할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달리기를 한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린다.
풋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하는 행동이 한번씩 웃길때가 많다.
집에 오는 버스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아버지란 사람에 대한 예전의 기억들이 자꾸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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