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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BY 해빙기 2008-10-25

선물이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애정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라면 그 진가는 큰 것이라고 한다.

예고도 없이 내린 게릴라성 폭우가 사람들의 가슴을 할키고 지나가며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겨 놓더니 불볕같은 더위가 찾아와 그 아픔에 흔적까지 남기려 하고 있다. 때늦은 더위에 가슴까지 덴 나는 머리까지 혼란스러웠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S여사가 만나자고 하였다.

S여사는 나보다 십 여 년 연배지만 모 방송국 주최 여름캠프에서 만난 인연으로 오 년째 글벗을 자처하면서 인연의 줄로 이어지고 있다. 내 쪽에서 가끔 전화를 하는 것을 고마워하며 무엇인가 주고 싶어 애를 쓴다.

선물도 마음으로 받아본 사람만이 마음으로 줄 수 있다고 지금까지 남에게 선물다운 선물을 주어 본 적이 없다. 습관처럼 받은 만큼 계산하게 되었고 섣불리 마음은 있어도 선물이라고 내놓지 못하는 사람이 나이다.

S여사는 뜻하지 않는 사고로 장애판정까지 받고 외출이 쉽지 않을텐데 나를 만나려고 몇 달을 벼르고 별러서 찾아 왔던 것이다. 이 더위가 물러가기 전에 꼭 주고 싶었다면 부채가 든 상자를 내놓았다.

상자 속에는 여섯 개 한 세트인 부채가 S여사의 마음처럼 고운 자태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바닥 전체가 X형으로 나누어 붉은빛, 노란빛, 푸른빛, 으로 칠하고 중앙에는 태극 모양을 넣은 둥근 부채 두 개와, 오각으로 나눠 분홍, 초록, 빨강, 노랑, 청색으로 칠한 오동나무 잎맥과 비슷한 오엽선이 한 쌍, 또 다른 한 쌍은 세시풍속도와 결혼풍속도가 그려진 부채이다. 부채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본다. 고향의 냄새였다. 호롱불 심지에서 나던 들기름 냄새에 흠뻑 젖어 고향을 그리며 추억에 젖어본다.

좋은 선물을 받고도 S여사에게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지난 해에는 찌꺼기 한 방울 없는 참기름을 받고 마음으로 주었던 선물에 감격하기도 했다. 화려한 꽃무늬가 있는 손수건을, 스타킹을, S여사에게 나는 받기만 한 것 같다.

서향집이라 햇빛이 따가운 오후에는 버튼 하나로 시원해질 수 있는 선풍기와 에어컨을 저만큼 밀쳐두고 벽에 걸린 부채를 내린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부채 속에 잠든 바람을 깨운다. 바람이 일렁거린다. S여사의 고운 마음도 함께 일렁대며 세속의 온갖 잡다한 생각으로 오염된 내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