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이 15살 중흑교 2학녕이 막 시작되던 3월
세월 은 말없이 무정하게 휘이돌아 많은 세월 을 넘어버렸군요
호기심 많은 15살 꽃봉오리 같던 우리에게 학기초의 관심은 오로지 담임 선생님
과 새로 부임 하신 선생님이였지요
"순자야 너 몇반이고 난 4반인데 "
"나는 6반아이가 우리 한반이면 좋을낀데 그쟈 마칠때도 같이가고 '
참새처럼 재잘되던 도래들의 설레임은 담임 선생님괴의 첫 만남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정말로 무서운 체육 선생님 이 담임이될까봐 며칠전부터 밤잠도 못이루고 오금을 저린 아이들도 있고 공학인 우리 학교 남학생들은 머리가 길고 가녀린 가정담당 배순정 선생님께서
담임이되길 오메불망 하면서 쿵덩대는 가슴을 밤하는 별에게 실려 보내기도 했지요
드뎌 운명의 그날
저는 2학녕 5반 그리고 담임 선생님은 서울에서 막 내려오신 여자선생님 이셨는데 날씬 하긴 햇지만 우리는 3반에 새로 부임 하신 총각 선생님에게로 눈이 자꾸만 갔습니다
총각 선생님께선 우리 학교 처음 부임 하셨고 우리랑은 열살 정도 차이가 난다고 소문이 돌았습니다
담당과목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먼 영어과목이셨습니다
목련은 아직도 피어나기 이른 봄에 노오란 생강꽃 나무가 연두빛 향을 교정 마당에 날릴던 오후에 영어선생님과의 결투가 시작되었고 이학녕 교과서를 펴기도전에 일학년 교과서 시험을 보고 시험 성적에 따라서 50점 이하로는 2점에 손바각 한대씩 벌칙이 가해졌습니다
잘생긴 총각선생님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저역시 48점에 손바닥 한대를 찰싹 맞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선생님 표정이 떠오르는듯 합니다
저는 결심 했습니다
영어만 해서 기필코 선생님께 인정 받겠노라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른 과목 숙제는 뒤로하고 밭일 하러가자는 엄마의 말씀도 물리치고
어떤날은 댓돌위에 신발을 몰래 방에다 숨겨 놓으면서 까지 오로지 영어에만 메달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영어선생님 께 인정 받아야 했기에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월말고사를 치고 오월 월말고사에는 98점을 맞을수 있었고
그 다음 부터는 전교 에서 최고로 인정을 받을수 있을정도로 영어 실력은 늘어 갔지만
내가 코피 까지 흘려가면서 영어에만 올인 하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영어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당연히 선생님의 이쁨을 받고 예기치 않게 친구들의 투기의 대상이되었습니다
친구의 투기는 얼마나 심했는지 화장실 벽에는 온통 저를 비난하는 낙서가 주를 이루고
심지어는 선생님과 얼레리 골레리 ..........까지.....
그렇게 라일락같은 달콤 쌉사름한 사랑인줄도 모르는 첫사랑이 내 가슴에 내렸습니다
오로지 선생님뿐이였던 그 시절
선생님 만 간절 했던 연두빛 사랑은 제 중학교 시절을 아프지만 이쁘게 추억을 할수 있는 작은 드라마가되었습니다
그때 영어 암송대회에 출전하면서 암기했던 콜롬보스 이야기는 아직도 제 기억속에 또렷이 남아있고 저는 수상을 하면서 다시금 친구들의 선망이되고 미움의 대상이되기도 했습니다
꿈 같았던 이년 세월이 바람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선생님께서는 학교를 사직하시고 선생님 전공을 찾아가셨습니다
라일락꽃처럼 찾아온 열병은 가을낙엽이 천지간에 서럽게 쌓일때 지독한 열병으로 이어지고
16살 나이로서 감당하기어려운 맘 속에 아픔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 하면서는 영어책을 덭어 놓는 일이 많아졌고 한때나마 영어 선생님을 꿈구었던 날들도 멀어져 갔습니다
흰머리가 더 많아서 염색하지 않으면 쉽게 외출도 못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도
15살의 봄은 아직도 생강꽃 나무 향으로 때로는 라일락 향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햇살좋은날은 꿈꾸던 시골학교마당으로 달려갑니다
배란다에 들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니 아득한 그시절이 그리워 몇자 올렸습니다
희망곡 진미령의 하얀 민들래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