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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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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 교복은 추억을


BY 단미 2006-04-07

제 나이 올해 47살 그러니까 29년이 훌쩍 지났네요


땅속에서 따뜻한 온기가 새싹을 밀어 올리고 겨우내 얼은 산골짜기 눈이 녹아내려


작고 투명한 물소리를내고  늦은 겨울이 밀려가고 이른 봄이 오던 그 어느날

 

조그만 부엌딸린 자취방에서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이쁘고 대견스러워 울기만 했다


그토록 절절하게 한번이라도 입어 보고싶어했던  하얀칼라에 까만 치마가 단정한 교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부모님 용돈받으며 투정부리고 행복해할 때 그아이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할때 나는 공단으로 무겁고 슬픈 발길을 돌려야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장녀란 무게가 어린 소녀에게 책임감으로 다가와 서둘러서 구미 공단에


취직한다고 3년동안 결석한번 하지않았는데 결석까지 하면서 서둘렀습니다

 

추운겨울 새벽밥을해먹고 한시간가량 걸리는 역으로향했다


커다란 뱀처럼 시꺼멓게 누워있는 논두렁이를 지나고 걷는사람 없는 신작로를따라서


희미하게 불밝혀진 시골역에 다다라  열차를탔고


생전 처음가는 구미공단이라는 땅을 밟았을때는 몹시도 당황스러웠지만 손에들린 주소데로


공장을 찾아가 면접을보고 일주일뒤에  학교가아닌 회사로 첫출근을 하게 되었고


동료랑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내 나이 17살이였습니다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 규모는 엄청나게 컸고 왜 대표가 일본사람인지 의아했지만


조심스레 하나둘 배워가면서 회사생활에 익숙해졌지만 학교에 대한 미련은 잠을 설치게


했고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여학생들 이 눈꼴사나워서  먼길을 돌아다녔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나에게도 기회가왔다 신이 날 버리지않으셨다


일년후에 산업체 특별학급 이라는 제도가 생기게 되었고 우리는 배울수가 있었다


산업체 특별학급이란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학교로가지 못하고 산업체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에게 배움의 기회를주고자 정부와 사측이 무상으로 교육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올해부터는 신입생을 더 이상 뽑지 않는다고하니 그만큼 경제가 좋아진점은 기쁘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약간의 경쟁도 있었지만 거뜬히 학교에 입학할수 있는 행운아가되었고


세상이 달라보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8시간 근무하고 바쁜 퇴근을하면 우리의 눈들이 반짝 반짝 빛이되어


교실에 모여있다 참으로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습니다


학교공부가 모자란다고 생각하여 새벽에 부기랑 타자배우러 학원으로 향하는 열성까지


보였다,  고졸이상인사람이 근무하는 자재과로 과장님 추천에 의해 자리를 옮기게되어서


한결 쉽게 공부를 할수있었다  틈틈이 책을보고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기말고사 치르는 마지막날에는 깜빡 졸다가 백지를 내는 아픔도 있었지만 졸고있는 성의가


가상하셨던지 아버지 같으셨던 윤리 선생님 께서 아량의 점수를 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일반 학생들이 일요일이되면 사복 입기를 좋아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교복만이 유일한 외출

 

복으로 여길만큼 교복입기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교복이 이쁘기도 했지만 자랑하고싶은 우쭐

 

함과  당당함이였겠지요

 

하얀 칼라에 검정 치마 여름엔 하얀 상의에 검정치마 까만 단화를 단정하게신고


단발머리 나폴대며 들로 산으로 꿈을 꾸며 다니던 그시절 그때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우리의 교복은 힘들고 외로운 자신만의 시간들을 잘 견뎌냈기에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더 잊지 못하는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살아가면서 힘들때는 여고시절의 교복을 생각하면 서 거뜬히 이겨내고 말지요


앨범 속에잘정돈된 사진속에 밝게 웃고있는 내모습이 너무 이쁘서 나 스스로 취해봅니다


참으로 이쁘고 특별했던 여고시절 교복을 오늘밤 꿈속에서라도 입어 보고싶네요

 

세월이 많이 흐렀지만 그시절 물심 양면으로 도와주신 좋은분들게 고개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