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버리고 싶다
컴퓨터
처음엔
너는 나의 충실한 종 이었다
젖꼭지만 톡톡 건드리면
사랑에 취한 몸짓으로 고분고분
알라딘 램프처럼 원하는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지구 끝 어디든 달려가
너 때문에 세상에 나가 아는 체도 하고
너 때문에 내 지갑을 두둑하게도 했다
내 배가 부르고 다른 사랑에 빠져
아주 오래 잊고 있다가 문득 네가 필요해
너를 찾았다
너는 앵돌아져 있었다
아무리 네 젖꼭지를 애무하고 달래도
오히려 다른 사랑바이러스에 감전되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동안 저장해둔 은밀한 요새를 무너뜨리고
비밀문서를 지워버리고
두뇌를 바닥낸 다음 검은 미소만 쏟아냈다
그럴 땐 너를 부숴버리고 싶은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네 달콤한 순종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온몸을 전율시키던 화려한 전희
이미 뗄 수 없을 정도의 관계로
침묵하는 너를 달래고 달래
마음을 돌려놓고
그제 서야 휴 숨을 고른다
너는 다시 돌아왔다
오늘은 멀리 미국으로 간 사람의 마음까지
슬몃 웃으며 내 곁에 데려다 놓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젠 네가 두려워진다
입속의 혀처럼 고분고분한 속에 감춰진
달콤한 마약
그 마약을 맞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게 되었으니
터미네이터가 되어
공격해올 것 같은 불안감이 앞선다
네 젖꼭지를 톡톡 더블클릭하면서
사랑에 중독된 나는
종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