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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의 추억


BY 천정자 2015-09-04

 

앞집도 뒷집도 우리 집 옆에 사는 이웃도 지금 파랗게 영글어가는 단감엔

아무도 관심이 없나보다.

요즘엔 들껫잎에 모두 정신이 팔려 키작고 어린 묘목에 달린 단감나무에

나는 유독 저 감이 언제 익을까?

그것만 골똘히 집중한다.

 

일곱살 무렵 외갓집과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집주인 할머니는 집이 두 채였다.

한 채는 섬에, 또 한 채는 육지에 있어 우리가족에게 독채로 세를 준 집 뒷뜰에

오래 늙은 단감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었다. 

 

내 어린 직감에도 그것은 푸른땡감이 아닌 단내나는 단감을 알아내어

동네 고만고만한 애들 몇 몇을 몰아서 우르르 등허리 굽어 낮은 흙담을 끼고 돌무덤같은

담을 넘어서 나뭇가지를 송두리채 꺽어 먹는 법을 일찍 저질럿으니.

울 엄마 그 단감나무는 할머니가 섬에서 나오면 추석에 제사에도 쓸 것이라고

절대로 따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는 하시지만.

 

어린 눈빛에 딱 걸린 그 단감은 기어히 오물오물 아삭아삭 씹히는 유혹에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사과 따먹은 이브는 아니더라도

낮은 가지에 매달린 감을 차례차례 따먹다 보니 높은 가지에 몇 개 안남은 감은 내 키와 전혀 거리가 멀었다.

동네 애들은 감나무 밑에서 햇빛을 피해 찡그려 손바닥으로 가려가며 올려다 보고 나는 보란듯이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원숭이처럼 요리저리 잘도 감을 땃는 데.

 

순식간에 얄창얄창한 감나무 가지가 분질러져 나는 그만 땅바박에 뚝 떨어졌다.  

눈을 떠보니 우리방이고 내옆에서 울 엄마는

내가 여름내내 다 따서 먹어버린 단감이 세어 보셨나 더 걱정이다.

" 세상에 그 많은 단감을 어떻게 그렇게 다 따먹냐?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주인할매가 오면 니 뭐라고 할 겨?

 어이그 어째 닌 하지말라면 더 하냐?"

 

감 따다가 떨어진 딸 걱정보다 내가 먹은 그 단감을 더 걱정하는 울 엄마 앞에서 나도 별 할 말이 없었다.

입이 한 개라서 다행이지.

 

요즘 구월인데도 무진 덥다.

그래선가 도통 푸른땡감마냥 이 단감이 노랗게 물들 기미가 없다.

이 나이에 내가 올라갈 단감나무도 없고

아무래도 그 때 감나무에서 떨어진 휴유증인가

가을만 되면 그 푸른 단감이 입덧하는 새댁마냥

목구멍이 심심하고 입맛만 다시는 것이 더 심해진다.

 

까짓거 돈만 들고 마트에 가면 사시사철 제철 과일이 아니더라도

맛난 감이 겁나게 많은데도 눈길도 가지 않는다.

 

단감의 추억이라고 해야 되나 그저 그렇게 유년의 가을이 지나가버렸어

혼잣말처럼 하기도 하는데,

그 때 떨어진 아득함이 파란 하늘색 하늘이 보였었나

긴가민가 하다.

 

언재 울엄마한테 내가 그 할머니네 단감을 애길 했더니

대답은 고사하고 울엄마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니 그 때 떨어져서 공부를 못한 것 같어!"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을 거 같다.

노는 데 정신 팔려  살다가 보니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후회는 없다.

 

까짓거 살다보니 배운 것도 못 배운 것도 나이 앞에선 평준화되는 거 시간문제다.

가을이 또 왔으니 이제 슬슬 동네 익은 감나무 구경이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