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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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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더 가기 전에,,


BY 천정자 2015-01-20

나의 어머니는 27살에 청상과부가 되셨다.

그러니까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을 하시다가

매몰사고로 돌아 가셨다. 그 후로 어머니는 줄 곧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똑 같았다.

" 다섯 살이 다 되어가는 데 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햇어.

거기다가 왜 그리 못생겼는지..."

 

지 애비를 그렇게 똑같이 닮을 게 뭐냐?

차라리 사내라면 이 놈 ! 이 놈 하지.

나중에 커서 너를 시집을 보내려면 돈을 많이 벌어 얼굴 뜯어 고치던지 해야지

울 엄마는 툭하면 나보고 그러셨다. 아이그 이 못난아...

왜 나를 쪼매 닮지 누가 지 에비 아니랄 까 봐.

하도 많이 듣다보니 이젠 토씨 하나 빠지면 뭔가 말이 어설프다.

 

울 집에 뒷동산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봄마다 온통 진달래가 난리를 치루는 곳이다.

거기다가 아버지는 나의 태를 묻었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동생 태도

보름달이 가장 밝은 곳에 묻은 것이 기억이 난다.

 

일곱 살 때 마지막으로 본 나의 아버지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방 안에서 나를 등에 태우고 말처럼 이랴이랴 하면

아버지는 히힝히힝 하는 목소리에

내가 까르르 웃었던 기억만 또렷하다. 나중에 중학교 때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시다가 동료와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 나랑 웃는 모습이 붕어빵 찍은 것처럼 똑같았다.

 

세월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원체 당신의 딸이 못생겼으니

돈도 없으니 성형도 못하고 그러니 어쩌면 좋으냐고 하는데, 다행인지 몰라도 남편은 못생긴 내 얼굴과 비슷하게 닮은 것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에 맞춰 그렇게 만나기도 힘든 운명이었다. 서로 못생긴 얼굴로 만나 부부로 사니 사람 인물 갖고 사나 그냥 사람 착하면 그걸로 사는 거다 하시는데, 요즘도 내 얼굴을 보면 울 엄마는 똑같은 말을 하신다.

“넌 니 애비랑 똑같어...”

 

다행히 결혼 후 애들은 내 얼굴을 별로 안 닮았다.

내가 처음 큰 아이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아이 얼굴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쉰 것이다. 솔직히 나도 내 자식이 나를 닮으면 나도 누가 니 에미 아니랄까봐 그렇게 쏙 빼닮았냐고 말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보다 좀 나은 남편을 많이 닮아 다행이었다. 대신 딸이 나랑 좀 비슷하지만 어쨌거나 어머니처럼 대놓고 못생겼다고 말하지 않았다.

 

전에 친구가 같이 쌍꺼플 수술하면 싸게 해준다는 말에 작고 볼품없이 옆으로 쭉 찢어진 눈을 크게 하면 예쁜 내 얼굴을 상상해보니 기분이 참 좋아서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더니 하지 마라 성화시다. 아니 언제는 돈 많이 벌어 뜯어 고쳐준다고 말을 하지 말지 나도 한 소리 했더니 결혼해서 애들 낳고 잘 사는데 뭐 하러 얼굴에 칼을 대냐고 하신다. 내 생각엔 어머니의 굵은 쌍꺼풀처럼 하면 될 것 같은데, 전화통화를 끊고 가만히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기억을 거슬러 옛 일들 기억을 더듬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세월이 몇 십 년 동안 혼자 당신이 네 남매를 키우시는 동안 벼라 별 일들이 생기고 지나갔을 텐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울고 같이 잠들 곤 한 기억이 생생하다. 우릴 키우기 위해서 남의 집 파출부를 오랫동안 하셨는데 너무 힘들어 집에 오시면 나를 보자마자 발 좀 주물러 달라고 하면 나는 말 없이 어머니 발을 주무르다보면 어머니는 스르르 잠이 드셨다.

 

이제야 어머니 심정이 이해가 된다. 나의 못생긴 얼굴이 내 아버지라는 울 엄마의 말이 문득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은 내가 아버지를 빼닮아서 그렇다는 것과 어머니는 나를 볼 때 마다 아버지를 보고 싶다 말 대신 너는 왜 그렇게 못생겼니 라는 말을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에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전혀 모를 비밀이

여자로 태어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인생 선배인 어머니 마음이 손에 잡히듯 알게 되었다. 내 못생긴 얼굴이 먼저 간 남편의 얼굴을 꼭 빼닮은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지금보다 더 어려운 그 삶의 전쟁터에서 혼자 네 남매를 키운다는 것이 보통 큰 역사보다 더 큰 일을 지금의 나도 두 아이 엄마로 살아보니 말로는 다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렵다.

 

어머니 전화가 아직 폴더폰이라 요즘 세상이 좋아져 셀카로 사진 주고받아 쉽게 얼굴을 보는 세상인데, 어머니랑 같이 사진을 찍어둔 모녀사진이 없다. 이제 보니 아버지랑 똑같이 닮은 딸과 쌍꺼풀 굵게 진 어머니랑 한 번도 같이 찍은 적이 한 번 있었는데도 사진이 없다. 어머니는 여자이지만 못생긴 딸도 여자예요. 여자라서 여자 맘을 잘 알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이렇게 편지도 써서 부치고 싶은데 마음만 굳게 먹고 아직 못했다.

 

세월이 더 가기 전에 오래 오래 건강하게 지내시라고 아버지 닮아 못생겨서 행복한 딸이라고 문자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