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자꾸 나의 음식솜씨는 고공낙하다. 결혼하시고 오랜 주부를 지낸 다른 사람들 말 들으면 진짜 자격증 없는 요리사가 다 된다는데, 아무리 오랫동안 주부면 뭐하나 먹을 줄만 알고 있으니 직접 해서 먹음 내가 했는데 영 그 맛이 아니다. 아들은 아예 엄마 음식솜씨는 밖에 내 놨다는데 어쩌다가 좀 맛이 있음 이거 누가 한 거여 묻는데 아주 의심 가득찬 목소리다. 아들도 이러는데 나를 아는 지인들은 눈감고도 나를 너무 잘 아신단다. 그 중에 나를 당신의 시집보낸 막내딸처럼 생각하시나 교회에 가면 늘 나만 찾아 다니신다. 그리고 보따리 보따리를 풀고 나에게 직접 주신다고 엊그제 딴 청양고추며, 호박, 양파를 싸주시는데, 사시사철 제철에 열리는 것은 아마 죄다 나에게 다 주신다. 내가 이거 줘도 잘 못해먹는다고 하니까 요리하는 순서를 또 일장연설하시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집에 가면 그토록 소상하게 해주신 요리하는 방법이 반의 반도 가물거린다. 이걸 먼저 삶으라고 했나 뭐라고 하셨지 다시 전화를 드려 봐? 나 원 참 이래 저래 뭐를 받아도 해 먹을 줄 몰라 걱정이다. 이웃 집 할머니에게 그렇게 나물 야채 과일이 썩기 전에 얼른 줘야 주는 성의 무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이웃과 사이가 돈독해졌다. 한 번은 당신이 직접 김치며 호박나물을 무쳐 혼자 사시는데 많다고 나에게 도로 주신다.공정한 거래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나는 뭘 모르면 쪼르르 옆집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분이 보통 분이 아닌 살림의 달인이셨다 매 번 두부 한 모를 사면 다 먹지 못하고 늘 남아서 반 모는 쉬어서 버린다고 하니까 두 부 안 쉬고 끝까지 잘 보관하는 법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천연방부제를 쓰란다. 그 것이 뭐냐고 하니 바로 쌀뜬물이란다. 쌀뜬물에 남은 두부를 담궈 놓으면 신기하게 쌀뜬물만 쉬고 두부는 싱싱하단다. 이 삼일에 한 번씩 쌀뜬물만 갈아주면 열 흘도 간단다. 말씀하신데로 그대로 했더니 진짜 천연방부제다. 어쩌면 그렇게 두부가 안쉬고 대신 담궈 놓은 쌀뜬물이 쉬는 것을 어떻게 알으셨는지 모르지만, 살림치에 가까운 나에게 이런 발견을 주시니까 툭하면 달려가 이 것 저 것 물어 보는 것이 당신한테 귀찮으실텐데 늘 웃으시면서 알려준다. 팁으로 쌀뜬물을 버리지 않고 늘 냉장고에 차게 보관해뒀다가 일회용 커피물로 한 번 끓여주시는데, 이거 진짜 기가 막힌 커피 맛이 더 훨신 탁월하게 맛있다. 구수한 숭늉커피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난 그동안 무심코 버린 쌀뜬물 열심히 모아 국에 커피물, 두부에 갈아 주고 거기다가 화초에 부어주니까 싱싱하게 잘 큰다. " 근디 하는 일이 있남 뭐하는 사람인 겨?" 이제야 나에 대해서 묻는 것을 보니 진짜 그 동안 궁금하셨던가 보다. 시골에서 살 땐 남의 집 숟가락 세고 다닐 정도로 오지랖을 너무 넓혀놔서 그런가 아파트로 이사오니까 이젠 만사가 다 귀찮다는 식으로 딱딱하게 굳은 콘크리트 벽 저리가라처럼 차갑게 살은 것 같아 내심 미안했다. 어디서든 사람으로 사는동안 오다가다 인사만 잘해도 만사에 거진 일이 해결된다는데, 옆 집 할머니 덕분에 두부도 두고 두고 쉬지도 않고 먹으니 이 것이 다 이웃을 잘 둔 덕분이다. 얼마 전엔 교회에서 또 들기름 소주병에 담긴 한 병을 얻었는데,해마다 얻어 먹은 들기름 덕분에 그 구수한 맛에 길들어져 버렸다. 어쩌다가 한 번 들기름을 사 먹은 적 있엇는데, 산 들기름보다 그렇게 얻어 먹은 들기름이 더 고소하고 구수하니까 내 머리속으로 돈으로 열심히 따져도 환산이 안된다. 어쩌다가 서로 주고 받다가 그만 푹 정이 들어버린 사람들이 나에겐 너무 과분하고 귀하다. 모지라고 부족한 사람들끼리 종종 부대끼며 사는 것이 가장 흔한 모습일텐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자꾸 귀한 풍경이다. 어디서 팔지도 못하고 사지도 못하는 것인데.. 오늘은 애호박 나물은 어떻게 하는지 옆집 할머니에게 찾아 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