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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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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그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BY 천정자 2014-01-18



작년에 이사오면서 오래되고 볼품없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고물처리를 했었다.

아파트로 새로 이사 왔는데 잔금 치르고 뭐 이 것 저 것 돈부터 나가니까 당장 세탁기 냉장고 살 돈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제일 필수적인 냉장고와 세탁기를 오래되었다고 버리고 온 나는 괜히 버렸다고 후회가 막심했다. 게으르고 느린 내 성격상 돈 생길때까지 버티는 것도 괜찮은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 겨울이라 베란다가 어지간한 냉장고 역활을 하는 것 같아 우선 대충 김치나 마른 반찬 같은 거 놓고 살았다.

 

 남편은 아파트에서 몇  칠 살더니 도저히 못 살겠단다.

왜그러냐고 따지니까 너무 높아서 어지럽고 현기증이 난단다.

그리고 곧 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다나.

본인이 어지러우니 아파트 전체가 흔들흔들 했나보다.

평생 늘 흙에서 농사 짓고 마당을 끼고 살던 사람이 팔자에 없는 아파트에서 살 줄은 예상도 못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겠지 했는데 딸내미 원룸에서 겨울나고 와야 되겠단다. 그래도 거긴 5층이고 아파트는 14층이니 딸집이 나을 것 같다고 하더니 나한테 전화로 그런다. 나 여기 원룸이여~~ 언제 올라간다는 말없이 그냥 후다닥 딸에게 상경부터 해버렸다. 딸내미 나한테 전화로 그런다.

" 아빠 여기 왜 왔어? "

" 아파트가 높아서 어지러워서 못 살겠다고 니네집에 간 거여" 했더니

피식 웃는다. 덕분에 부녀지간에 그 동안 떨어져 지낸 사이 못 해 본 거 다 해보라고 했더니 안그래도 그런다.

"아빠 지금 청소 하느라 난리났어!"

오나 가나 그 깔끔한 성격탓에 늘 걸레들고 다니는 것은 딸내미 집이라고 별 수 없을 것이다.

 

덕분에  집안이 더 넓어졌다.

달랑 나 하나 남았으니 세탁기 없이 몇 가지 손빨래 해도 무리 없고

넓은 베란다가 큰 냉장고보다 더 용량이 크니까 당장 냉장고 사는 것도 보류다.

두 어달 후에 군에 간 아들 제대하면 그 땐 냉장고를 알아볼 때까지 시간도 남은 것 같고 급 할 것 없이 벌써 2014년이 시작했는데 가만히 달력을 보니 나이만 자꾸 느니

생각도 복잡해진다.

 

거창한 신년 계획을 세우긴 세워야 겠는데 뭐를 할까 ..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복 많이 받고 등등 좋다는 거 다 열거를 해도 싱드렁하다.

뭐를 원하기만 하면 다 될 때까지 기도하고 빌고 노력하는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은 귀찮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 정도면 잘 사는거지 해도 뭔가 석연치 않은 불안함에 초조하게 한다. 만족을 모르게 누가 감춰 두었을까 의심도 하게 한다.

 

평생동안 살면서 누군가에겐 나는 어떻게 읽혀질까 이제야 궁금하기도 하고,

같이 있을 땐 몰랐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참 나에게 잘해줬는데 난 그 만큼 못 해준것만 생각난다. 이제야 미안하고 면구 스럽다. 세월이 자꾸 흐르면 흐를 수록 미안한 것만 자꾸 떠오르니 그래서 나이는 공짜가 아닌가보다.

 

사는데 하나도 급하게 서두를 게 없는데도 늘 쫒기는 기분이 왜 드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남들 하는데로 비스므레 살다가 가는 것인데, 특출나게 뛰어나도 튄다고 찍히는 것을 보고 되레 겁만 먹게 된다. 그저 나 같은 사람은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게 최고 상책이지 싶다.

 

신년 계획 세울려고 달력보다가 그냥 나도 딸내미처럼 피식 웃었다. 

이 번 한 해도 건강하고 사고 안나고 그저 무사하게 아들 제대하고 또 하나 추가 한다면 냉장고 한 대 사고 뭐 그런 거 아주 사소한 것들이 무탈하게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덤으로 남편 담배나 끊으라고 해볼까? 아파트에서 살려면 담배는 필수적으로 끊어야 한다고 했더니 더 못 살겠다고 했는데, 나랑 오래 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려면 담배는 끊으라고 해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