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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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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BY 천정자 2013-11-12

 

지금으로 부터 12년 전이다.

진료실 밖엔 환자들이 붐비고 안에 있는 나와 딸아이는 의사선생님 눈치만 보고 있었다.

4 년동안 약물치료를 했지만 간질발작은 좀 수그려 들었는데 딸아이 지능은 검사를 따로

해봐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큰 대학병원에서 인지능력 검사를 따로 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처음엔 이 애길 들을 땐 내 생각엔 간질만 나으면 된 것 아닌가 했고, 늘 병원비도 밀려 외상을 하는데 또 무슨 검사를 받으라고 하지만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니 참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당시 약 때문에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고 몸은 붓는 것 처럼 비만아동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인지능력 테스트를 받아 병 하나 더 추가 하라는 것처럼 느꼈다.

 

병원 가는 길에 특히 딸아이랑 같이 병원 가는 길은 왜그리 싫었는지 모른다. 안가면 안되는 법 없나 이 궁리 저 핑계 끌어 모으다가 결론은 일단 한 번 가보고 결정하자고 이렇게 몇 번을 갔지만 내 예상대로 딸아이는 장애등급이 결정된 장애아동이라고 확인만 되었다. 딸아이를 치료하던 의사는 나에게 그랬다. 앞으론 장애등급도 아주 까다롭고 복잡해 질테니 아이가 진단을 받았을 때 얼른 장애인 등록을 하라고 내가 갈 때마다 사정을 하셨다.딸아이의 엄마인 나는 혹시 몰라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좋아져서 정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버티니까 이젠 아예 의사선생님이 얼른 동사무소에 가서 장애인 등록 신청서를 갖고 오라는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장애인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 때 그렇게 진단서를 발급해주면서 그러셨다. 나중에 아이가 좋아지면 그 때 또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면서 그래도 그럴 일보다 아이가 크면 사회생활 할 때 장애인으로서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주장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젠 장애인 선정도 큰 병원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까다로울 거라고 했었다. 그렇게 확정 받던 날 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세월이 12년이나 흘러갔다. 작년에 딸아이는 대기업 전자회사에 취업이 되어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저녁에 퇴근한 딸아이가 그런다. 비정규직이 뭐냐고, 계약직은 뭐고 정규직은 또 뭐냐고 한다. 그제야 작년에 회사와 계약한 근로계약서를 확인 해봤더니 딸아이는 일년 계약직이라는 것을 알았다. 딸아이 말로는 이 번 해엔 정규직은 아예 뽑지도 않고, 육 개월 연장 재계약이나, 아님 알바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진짜 늘 방송으로 듣던 비정규직 계약직등등 현실이라면 진짜 이런 사실이 현실이구나 했었다. 난다 긴다하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되어도 비 정규직이면 일단 정규직보다 반토막 급여를 받는 다. 그것도 일년 계약직이면 또 다시 일 년 연장을 한다고 해도 그 후론 정규직전환은 어렵다고 한다. 울 딸아이가 그 동안 좋은 경험을 하고 경력도 쌓은 것으로 만족을 해야 되는 구나 했었다. 일반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여 일도 하고 돈도 벌어 봤으니까 만족이라면 여기까지도 어디냐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딸도 나도 그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좀 덜 속상할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몇 칠 후 딸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 엄마 ! 회사에서 나보고 자기소개서를 써서 내래?"

순간 머리가 댕! 하는 듯 울렸다. 자기소개서나 마나 어떻게 쓰는 줄 잘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아니 왜 그런 걸 써오라는 건지 짐작도 안갔다. 저녁에 퇴근한 딸은 한 통의 공문을 들고 왔다.

" 정규직 채용 대상 서류 제출 할 것!"

보고 또 읽고 또 확인했다. 이 번 해엔 한 명도 안 뽑는다고 했는데 이게 웬 일이야!

딸 아이는 어떻게 그런 소개서를 쓰냐고 난리다. 엄마 내 소개를 어떻게 하는 거야 뭐를 써야 되냐고 너무 어렵다고 회사 그만둔다고 하니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유일하게 단 한 명을 채용한다고 생활기록부와 가족관계증명서와 함께 제출하란다. 대상자에 딸아이 이름만 있었다. 문제는 자기소개서 쓰기였다. 아무리 내가 대신 대필을 해 준다고 한들 언젠가는 딸아이가 장애인 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숨길 게 따로 있지 나는 딸에게 말했다.

" 할 수 없다 니가 아픈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 회사에서 너를 보호해 줄 것 같다!"

했더니 어떻게 애기하냔다. 창피하고 차라리 회사를 안다닌단다.

 

잠이 오지 않았다. 불과 12년 전에 일어난 일이 어제 일어난 것처럼 딸과 함께 병원에 다녔던 일들이 어떻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을까 싶었다. 평생 두고 두고 잊지 못할 상처였을텐데 그 걸 애기하라고 했으니 딸에겐 참 아픈 말이다.

아침에 딸은 시무룩한 얼굴로 출근했다. 나도 그냥 더 주장할 수 도 없었다. 그런데

딸내미가 한 통의 문자로 보냈다.

" 엄마 학교에 가서 생활기록부 떼와^^"

딸의 부탁으로 학교에 가니 딸 담임선생님을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까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축하한다고 하신다.

작년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일년 일을 해보고 난 후 정규직 전환을 한다고 회사에서 말했단다. 담임 선생님도 딸아이의 장애를 잘 아신다. 넘 걱정하지 말란다. 딸아이가 착하고 마음씨가 곱고 친구들하고 잘 지냈다는 생활기록을 써주신 담임선생님이다.

유일하게 단 한 사람 뽑는데 딸이 되었다는 말에 연신 축하한다고 하신다.

 

그렇게 서류를 제출하고 나는 인사과 담당자에게 한 통의 멜을 보냈다.

딸아이는 장애가 있어 엄마인 제가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도와줬습니다. 이렇게 보내니 속이 후련하다. 돌아 온 딸내미 얼굴이 밝았다. 그래 앞으로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시련이 생기고 또 견뎌내는 것이 삶인데 네가 갖고 있는 것이 보잘 것 없고 형편 없어도 네 인생은 틀림없을 것이다.

어제가 뻬뻬로데이라고 과자를 하나 받아왔다.

겉에 메모지에 써 있는 것을 읽어 봤다.

" 성실하고 착한 너를 좋아하는 거 잘 알쥐~~~"

누가 준 거냐고 물었더니 계장님이란다.

 

하루 하루 이 모든 일이 그냥 허투루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을 이제야 알았다.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나만 비껴 갔으면 하는 것들이 그 동안 얼마나 많았었는데,

오롯히 겪어서 끈기를 가진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고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어난 것임을 고백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