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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길고 멀지라도


BY 천정자 2013-01-26

내가 스물일 땐 여자 나이 마흔만 넘으면 얼굴에 쪼글쪼글 주름살 많은 할머니가 되어서 죽을 나이로 생각했었다.

그 때 상상 그대로라면 나는 벌써 죽어도 몇 번 죽을 인생이다. 그런데 그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큰아이가 스무살이 넘어도 나는 아직 젊은 엄마다. 얼굴에 쪼글쪼글 주름살도 아직 없다. 더군다나 평균수명이 길어진 다는 것은 자식과 함께 한 오 십여년  살면서 같이 늙어가야 한다는 애기다. 말이 같이 산다는 뜻은 먹고 자고 같은 생활을 한다는 몇 십 년간의 시간을 함축한다. 그러니 그 동안 열심히 부지런하게 사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뭔가를 해가면서 늙어야 한다는 애긴데 뭘 하고 살면서 늙을까   고민이다.

 

90세의 나이에 시집을 내고 미술 개인전을 열고 나름 당신들 시간을  잘 관리하셔서 바쁘게 사는 분들을 뵈면 존경스럽다. 아무래도 나도 환갑잔치 때 잔치비용으로 그 동안 사는 애기 모아 두었다가  정자의 일대기 이렇게 책을 한 권 내서 울 아들 딸에게 유산으로 남겨줄까 이런 저런 생각도 해봤었는데. 육십 이후로도 아픈데 없고 진짜 건강하다면 또 다른 직업이나 기술을 개발해야 되나 싶다. 이 좋은 세상에 할 일도 많을 것인데. 나같이 오지랖 넓은 아줌마는 육십이 넘어도 시끄러운 수대쟁이 될 것은 틀림없다.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너무 긴 인생 프리젠테이션은 못해도 뭔가  자구책이라도 새워 둬야 할 것 같은 예감이다.

 

울 아들   장가가서 자기 살기 바쁠테고, 자식이 열 있으면 뭐하나 나랑 같이 있자고 해도 부담스러울테고, 천상 남편과 달랑 둘 남을텐데 취미도 성격도 달라도 너무 달라 이거 참 노후는 같이 보내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같이 tv를 봐도 남편은 일일 드라마 아님 영화, 마누라는 아홉시 뉴스보다가 졸려 잠드는 잠탱이고 보니 한 번은 그 재미난 드라마 같이 보다가 저거 내용이 어떻게 되는거야 뭘 물어보면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버럭대니까 아예 베개들고 딸 방으로 들어가 잠만 잤다. 영화도 남편은 싸우고 부수고 사람 총으로 쏴서 수 백명 죽어 나가는 것 아니면 재미없단다. 아마 람보영화는 엄청 봤을 거다. 반면엔 나는 다큐 아니면 멜로물도 좀 조용한 것을 보니까 한 번은 영화관 가서 각자 보고 싶은 것 고르고 다 보고 난후 다시 표파는  매표소에 다시  만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둘은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어떻게 이 십여 년  멋모르고 용케 잘 살았는데. 또 이십여 년 그렇게 알고 살라고 하면 진짜 고민 된다. 남편도 이젠 남들이 말하는 그 성질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 그건 사정모르는 남들 생각이고  같이 사는 마누라인 나는 고려를 해봐야 하는 처지다.

 

그렇다고 내가 살림을 잘 하냐 그것도 아니고, 천상 내가 못하는 것은 남편이 대신 도맡아 알아서 척척 해주니까 그 땐 그래도 좀 봐주자 이러다가도 조삼모사라던가 딱 그런 때가 있으니 그냥 진짜 연구를 해서 어떻게 좀 타협을 보긴 봐야 되겠다 이런 궁리를 해봤지만, 쪽집게처럼 묘수는 영 떠오르지는 않는다. 나 만큼 남편을 잘 아는 다른 사람은 없을테니 자문을 구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나를 잘 안다 할 것이다.

아는 것으로 끝나는 관계가 아닌데, 우린 잘 알고 있을 것이니 왜 내가 원하는데로 안 따라 주냐고 그것 때문에 엄청 싸웠다. 지금은 모두 다 지나간 태풍인데, 그 덕에 무엇이 상대의 약점인지 장장인지 단점인지 좀 가늠하게 됐다.  

 

부부가 그냥 건강하고 아무 탈없이 오래 산다는 것도 사실 엄청 큰 일이다. 왜냐하면 둘이 아무 일 없이 늙어서 하루종일 마주보고 살라고 하면 그것도 서로 곤역일 것이다. 남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니까 다행히 직장이나 직업상 은퇴 할 일은 없지만, 문제는 나다.  천성적으로 느린데다가 엎친데 덮친다고 게을러서 내일 지구가 당장 망해도 지금 졸리면 한 숨 자고 난 후 그 때 생각 해보자 이런 느긋한 성격 때문에  성질 급한 남편과 정반대다. 남들이 고치라고 하면 되레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같이 사는 남편은 이젠 아예 나의 성격에 포기한 상태다. 서로 평행선처럼 간격을 두니 서로 틀리다고 왈가왈부  신경전을 펼칠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도 별로 없었다.

나는 여전히 느리고 남편은 여전히 성격이 급하다.

 

언젠가 방송에서 60년간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를 보다가 남편이 느닷없이  그런다.

" 우리도 한 사 십년을 같이 더 살아야 60년 되나?" 이렇게 물으니

나도 그 때가 언제 될지 아득하다. 그럼 울 아들은 몇 살이고, 손자도 손녀도 보면 진짜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 될 것인데, 좀 부지런한 노인이 되야 좀 면목이 설까 지금처럼 살면 당신은 버럭 버럭 성질내면 오던 애들도 다 도망간다고 했더니 내가 아무때나 성질내냐고 또 성화다. 내가 무슨 말을 못하겠다.

 

 

지금 세상이 사람이 살기 참 편해지는 만큼 사람 마음도 서로에게 편해져야 할텐데,

 

생각은 하는데  이게 맘대로 안된다. 잘해줘야지 하다가도 별 거 아닌것으로 한참삐져가지고 말도 안하고 어떤 때는 밥도 안해주고 그래도 남편은 원래 혼자 잘 차려서 먹으니 아쉬운 건 나만 손해다.

 

좀 있으면 흰 가래떡 말려 썰어서 떡국 끓여 먹는 설날이 코 앞이다. 또 한 살 더 먹는다는데 거절해도 그냥 얹어지는 숫자가 아니다. 사람의 나이엔 경험과 지혜의 나이도 한 살 한 살 시루떡처럼 포개져 삶의 경력이 덤처럼  얹어. 너도 내 나이 되봐라 하시던 어른들 말씀이 새롭다. 왜 그렇게 말씀을 했는지 내가 경험해보니 그 말씀만큼 알맞은 말이 없다. 역지사지라고 그런 경우가 되면 알게 되는 삶의 지혜가 느껴진다.

 

오늘은 남편과 한 번 주말영화를 같이 봐야 되겠다. 그렇게 치고 박고 싸우는 영화가 얼마나 씨끄러운데 잠이 오냐고 타박을 해도 좀 들어주고 나도 다양한 장르를 봐야

새상 애기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살 더 먹으니까 남편이 더 늙어보인다. 그래 지금 같이 있을 때 더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