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갑안에 나를 증명해 줄 만한 신분증이 몇 개 있다.
주민증, 운전면허증, 회원증등..
나의 못생긴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물끄러미 드려다 보면
' 혹시 이 여자가 난가? 그럼 누구여? " 혼자 이런다.
남의 집에 방문 할 때 현관에 매달린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누구세요?" 이러면
대답을 얼른 해야 하는데 입에서 우물쭈물 그런 현상과 같다.
나이가 들면 좀 지혜도 저절로 생기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따로 안 배워도 저절로 익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매번 당하고 다음엔 안 그래야지 해도
그 자체를 잘도 잊어 먹는데, 정말 느는 건 나이가 더해지고
삶을 살면서 지켜야 하는 것은 어디다가 흘리고 칠칠치 못하게 챙기지 못하는 것도
모르고 살았던 같다.
좀 그럴 듯한 말도 익혀 써먹으려고 해도 누가 들어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없이 내 글방에 주절주절 보따리 풀어 놓을 수 밖에.
더군다나 요즘 내가 더 정신을 못차리는 것은
여기저기 하얀 목련에 벚꽃들이 피워대느라 난리통인데
이제 우리집 마당에서 몇 십년 째 크는 살구나무도 꽃망을 매달고 있는 것을 보니
봄이 나의 정신을 못차리게 하였구나 했다.
우리집은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흙집이다.
흙집에 살고 부터 나는 많은 혜택을 입었는데도 잘 모르고 있었다.
마당 구석구석에 민들레, 돌나물, 부추, 냉이꽃이 벌써 펴서 하얗다.
어쩜 좋아 저걸 얼른 뜯어 냉이 겉절이 좀 해먹을 걸.
새순으로 연하게 올라오는 부추는 지금이 가장 좋은 약부추다.
비타민의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의 손길이나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도
봄나물은 들에 흔하게 크고 있으니
내가 좀 부지런히 수고하면 거저 얻어 먹을 수 있는 봄나물이 집 근처에 지천이다.
봄에 미나리꽝엔 더 푸른 연두색으로 뒤덮였다.
나는 미나리 나물을 아주 좋아한다. 미나리를 삶아서 들기름 몇 방울에 소금으로 간을 해서 조물조물 무쳐서
고추장에 밥 비벼먹음 진짜 보약 한 접 다 마신 것 보다 저리가라다.
야생달래도 젓가락보다 더 얇은 연두색 순이 어쩜 그렇게 키가 쑥쑥 잘 클까.
그걸 또 캐다가 달래장을 만들어 비벼먹고,
좀 남으면 김을 찢어 김장아찌 만들어 먹음 달래향기가 듬뿍 배인 김장아찌를 동시에 먹을 수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까 우리가 늘상 먹는 것들이 지금은 모두 건강식단이다.
시골에서 살아보니까 부식값이 별로 안든다.
마트도 머니까 자주 가는 것도 큰 일이다.
야식 배달 음식도 멀어서 안 온단다.
처음엔 이런 저런 것도 불편하더니 지금은 그런 것 안와서 외식비용 줄고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좋다.
사실 배달 음식이야 많은 사람들 입맛에 맞춰 각종 조미료에 식품첨가물이 안들어가면 맛없을 테니,
내가 선택하지 않음 그만이다.
나중에 노후생활도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
사는 방식이야 다 거기서 거길테고, 그저 마음이 편안하면 만족한다.
오늘은 무슨 나물을 해 먹을까.
그러다가 자면서 하루반성이야 내일로 미뤄 보기도 하고
꿈꾸는 미래는 와야 현실이다.
그래서 가끔가다가 도대체 내가 누굴까 내 사진 보고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