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화에 모르는 발신번호가 떴다.
전화를 받아보니 낭랑한 목소리로 울 남편 이름을 대고 그 댁 맞냐고 묻는다.
나는 속으로 혹시 울 남편이 나 모르게 뭔 짓을? 잠깐 그 생각을 했지만, 어디냐고 묻자 병원이란다. 아니 왠 병원일까?
" 아니 작년에 두고 가신 지갑을 찾아가지 않으셔서 저희가 경찰에 신고할려고 지갑을
열어 봤더니, 우리 병원에 내원하신 환자분이데요, 전화번호 확인하고 연락드린 겁니다"
세상에나 기가 막혀서 내가 어디다가 뭘 뒀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더니 그때 병원에 남편의 발바닥에 뭐가 잡히고 종양처럼 곪아 치료차 남편하고 같이 가서 수납을 하고 아무생각없이 데스크에 지갑을 두고 온 것이 그 전화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다. 알았다고 얼른 찾으러 간다고 하고 부랴부랴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가 그런다. 주인이 지갑찾아 오겠지 작년부터 기다리다가 지쳐 주인이 하도 안오니 그제야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확인해보니까 내 지갑에 남편의 신분증을 보고 외래환자임을 확인했단다. 그러니까 지갑을 잃어버린 것은 작년 12월이고. 찾은 때는 해가 바뀌어서 일년만에 찾았으니 진짜 감회가 새로웠다. 그 간호사가 그런다.
' 아니 마지막으로 지갑을 사용한데가 기억이 안나셨어요? 우린 기다리다 기다리다 경찰에 신고할려고 했는데 신분증 재발급신청 하셨겠네요? 우리가 진즉에 연락드릴 걸 그랬어요" 아이고 친절하신 간호사의 안내에 굽신 굽신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내 지갑안엔 돈은 별로 없지만, 지갑이 더 애틋한 사연이 담겨져 있다. 아는 지인이 오래전에 직접 멀리서 찾아오셔서 선물을 주신 것인데, 내가 관리못해 잃어버린 걸 알면 좀 섭섭하실 것 같고, 그냥 그 비스므레한 지갑을 사긴 사야 겠는데, 일어버린 후에 알고보니 수제지갑이란다. 비싼 것 보다도 그동안 그런 것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사용한 내 책임이 참 무성의한 것이다. 어쨌거니 신분증에, 운전면허중에. 은행보안카드. 직불카드등 들기도 많이 들어 그거 일일히 동사무소에 은행에 재발급 신청을 해야 하는데. 내심 그 누군가 주웠다면 파출소나 우체통에 넣어주면 다시 돌아오면 그 때까지 좀 기다리고 한 몇 달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신분증없어 불편하니까 그 때가서 사진이나 한장 찍고 재발급 신청해야지 이렇게 남편에게 애길 했더니 난리가 났다. 내 신분증을 누가 도용하면 어쩔려고 하냐, 어째 그렇게 매사에 느려터져 가지고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하냐등등 하도 잔소리에 시달려 오늘 낼 동사무소에 갈려고 하는 차에 그렇게 병원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남편도 기가 막혔나 보다. 그러니까 병원에 두고 온 것을 전혀 기억을 못했냐고 또 놀려댄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뭐냐고 하는 말에 그래도 다행이지 재발급 신청 안해도 지갑이 온전하게 고스란히 돌아왔으면 됐지 뭘 더 이상 바라냐고 했다.
친구가 만나자고 해서 내가 다시 지갑을 찾은 애길 하니 그 친구가 그런다.
" 애 너같이 느린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지"
가만히 그 말을 듣고보니 진짜 애걸복걸 아등바등 사는 것도 다 나름 복일테고
나같이 세월아 네월아 너는 가냐 나는 쉬었다 간다 이것도 각각 다를테니까.
내 친구가 닭발을 좋아한다. 지갑안에 있던 현금으로 아주 매운 닭발무침을 사줬다.
그 친구 그러네..
" 이번엔 지갑을 찾았으니까 지갑턱도 한 번 내야지?"
" 그려 그려 알았어"
아 ! 이거 참 세상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