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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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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 마누라


BY 천정자 2011-12-03

어쩌다가 집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재택알바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시청에서 월급주는데 집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라고 해도 된다고 했다. 집에서 하루 세끼를 다 해먹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근처 홀애비는 다 모였나 보다. 알고보니 같은 조로 편성되서 점심만 같이 먹고 또 산근처를 빙둘러 보고 그렇게 퇴근하는 사람이 남자가 다섯명이다.

 

이렇게 우리집에서 점심을 해먹다보니 남자들이 점심식대들을 각자 부담해서 시장을 봐오고 반찬을 만들어 먹고 남으면 우리집에 냉장고에 넣어 놓고 그 다음날 또 그렇게 먹으니까 내가 헷갈린다. 분명히 안주인은 난데 이게 우리 것인지 아닌지 톰 구분이 안간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런다.

"언제 니가 시장이나 제대로 봐오냐?"

말의 뜻은 뭐하나 제대로 한 게 뭐냐는 뜻이다.

 

같이 살면서 무수히 들은 잔소리중에 한 마디인데. 나도  그건 인정한다.

시장가서 돈만 주고 물건을 두고 와서 집에 와서 내가 뭘 사긴 샀는데 뭘 샀나 가계부에 돈쓴 건 쓰는데, 도대체 뭘 샀나 아무리 머리속에 있는 그 기억을 뒤적거려도 모르고 지내다가 나중에 시장에 가보면 단골손님인 외상손님처럼 돈은 먼저 주고 물건은 나중에 찾아 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가게주인이 멸치하고 김 한 톳을 산다고 비닐봉지에 다 포장하고 돈을 받고, 거스름 잔돈 주고 받으면서 고맙다고 하더니 내가 가더란다. 그 주인도 다른 손님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웬 검정 비니루가 책상에 놓여져 보니 내가 돈만주고 물건을 그냥 두고 간것을 발견했는데, 다시 올 줄 알았단다. 한 십년 단골손님인데, 전화번호를 알면 전화를 해줄텐데, 알고보니 이름 몰라 얼굴만 잘아는 단골손님이었으니 이제나 저제나 언제 또 오겠지 했는데. 그렇게 물건 놓고 칠칠치

못하게 덜렁대는 사람이 마누라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편인데 그 잔소리가 여기서 빠질리가 없다.

 

아무튼 남편이 집에서 근무하는 통에 나는 밥을 언제 내가 해먹었나 손을 꼽을 정도다. 반찬도 골고루도 장을 봐와서 나보다 더 잘 해먹는다. 한 번은 어디서 폐계닭을 몇 마리에 만원을 줬다고 하루는 닭백숙, 그 다음날은 닭도리탕. 무슨 남자들이 요리학원을 다 다녔었나 나는 저녁에 그들이 남겨 놓은 요리들을 시식하고 있으니 내가 전용 요리사을 따로  채용한 것처럼 무슨 사모님 된 기분이라고 했더니 남편 나를 또 째려본다. 니는 어째 맨날 얻어 먹기만 하려냐 꼭 말을 해야 그 눈빛이 전혀 모를 줄 알겠지만. 요리 못하는 마누라 만나 사는 것도 다 팔자려니 하고 살어야 한다는 나의 말대답 대신 헤헤 웃었다.

 

어제는 쇠고기를 얄팍하게 저며서 무우를 넣어 시원한 국을 끓여 놓았다. 

" 아니 이 국 어떤 아저씨가 끓인거야? 진짜 잘 끓였다 맛있네!" 했더니

남편이 그런다. 먹고 좀 배워라..

 

오늘은 돼지등뼈 넣고 묵은지 뼈다귀탕을 하려고 한단다.

나는 속으로 그랬다.

내가 복 받은 건가.. 헤헤

내가 워낙 살림도  음식도 잘 못하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남자들이 날마다 매일 돌아가면서 맛있는 음식을 대령하니 이건 필시 복이 날마다 들어 오는 것이다.

 

거기다가 뒷설거지도 청소도 나보다 더 깔끔하게 잘하고 퇴근하시니 이게 금상첨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거 참 사람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이렇게 살 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