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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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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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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집에서 근무중입니다..


BY 천정자 2011-11-26

남편은 진짜 직업은 농사이고 쌀농사만  짓는 농사꾼이다.

그러니까 나는 농사꾼의 마누라인데, 어찌 된 일인지 아직 남편의 정확한 몇 마지기의 농사를 짓는지 지금도 헷갈린다.

가을이되면 수확하고 그 다음부터 별로 할 일 없는 백수농부가 되어 늘 집에 있는 겨울이 온다.

그렇다고 농사꾼 마누라인 나도 같이 집에 있어야 하는데

늘  밤에 나이트 근무하면 집에 늦게 들어가는 통에 주위 시골양반들 무척 오해를 많이 했었다.

저집 마누라는 집에 들어 왔다 나갔다 하나벼~~ 이런 생각 하시는 할머니도 있으셨는데 말 않해도 동네 어르신들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남편은 착하다. 어느 정도 착하냐면 친구들 다 불러들여 밥해먹여가며 실컷 놀다가 늦으면 잠까지 재워 보내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마누라가 안 들어 오는 날엔 어김없이 밤새 같이 놀고 그랬었나 보다. 눈치가 느려 미련한 곰탱이 마누라는 그것도 모르고 여지껏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그렇게 늘  같이 지내오던 한 친구가 우연히 장 보러가던 남편을 길거리에서 만났단다.

요즘 뭐하냐 서로 안부 묻다가 남편은 농사 끝났으니 지금부터 논다고 했나보다.

그러냐고 그럼 시청에 산불예방 직원을 지금 뽑고 있는데 얼른 이력서를 내라고 하더란다.

 

그리하여 그 날 당장 얼른 이력서와 서류를 제출했는데

문제는 면접을 보고 시험을 봐야 한단다.

그렇게 나에게 말하면서 그 시험이 10kg 인지 20kg인지 모래자루를 어깨에 메고 공설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게 시험이란다.

가만히 듣고 보니 그냥 뛰어도 힘든데 그 무거운 모래자루를 들고 자칭 낼 모레면 환갑이라는 남편이 그 시험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괜히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리 부러지면  어쩔까 싶었다.

 

그 일을 소개한 친구도 그 시험에 통과해서 이미 직원으로 채용되었다고 하면서 운동장에 나가서 연습을 엄청 많이 했다고 하더란다. 그러니 자기도 연습을 하긴 해야 겠는데. 그 시험이 서류내고 바로 다음 날이니, 눈뜨면 일찍 나가서 연습을 해야 겠다고 결심을 하는 눈치다. 그래서 그렇게 아침 일찍 나 간 남편이 통 연락이 없다.

 

그렇다고 어떻게 됐나 전화를 할려니 이 거 참 또 불안해진다. 그 동안 뜨거운 여름 내내 농사를  짓느라 힘들었는데, 그래도 한 철농사이니 겨울은 푹 쉬었슴 하는 내 생각이지만. 본인은 그렇게 여유롭지 못한 가정경제를 위하여 모래자루를 들고 뛰는 남편모습을 상상해보니 마음이 짠한 것이다. 괜히 그런 일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또  미안하다. 무거운 거 들고 뛰다가 넘어지면 탈락이라고 하던데 별별 상상을 하다가 어차피 저녁에 들어오면 결과는 알 수 있겠다 싶어 기다리기로 했다.

 

저녁이 늦어져 왜 이리 늦냐고 전화 하려다가 말았다. 그런데 전화가 온다. 남편이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 거 참 시험 못 봤어!"

" 뭐? 왜?"

그런데 전화가 갑자기 뚜 뚜 뚜..엥 이거 왜 이러냐고.

다른 전화통화 할 땐 서로 끊는 다고 확인하고 끊더니 이건 통화 중단 사태다. 더욱 궁금하다. 시험 안 본 것도 아니고 못 봤다고 그럼 아예 불합격인가 싶고, 아니 서류를 냈는데 시험은 못 봤다 무슨 말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그런가 싶었다.

 

또 전화를 했더니 전원이 꺼져 있단다. 늘 전화기 충전을 간당간당 모자르게 하고 다니더니 정작 중요한 전화 할 땐 꼭 그러더라. 할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는데, 모르는 발신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 응 나여 전화기가 꺼졌는디 시험 안보고 합격했어 내가 집에 가서 자세히 애기 해줄께 기다려 알았지?"

남의 전화니 내 대답도 안듣고 얼른 끊어 버리는 전화통화에 아니 시험도 안보고 합격햇다는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나도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운수대통 횡재한 듯 싱글벙글이다.

애기를 들어보니 이젠 나도 이해가 간다. 공설운동장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 지역 소방대원들 체육대회를 하고 있으니  어디서 모래자루를 들고 뛸 수 도 없고, 시험 볼 사람이 남편 단 한 명이더란다. 그러니 면접관이 제안을 하는데 혼자서 시험 볼 수는 없고 대신 내년 1 월달에 다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험을 보라고 하더란다. 그 대신 합격처리를 해준다고  그래서 합격이란다. 그러니까 모래자루를 메고 뛰지도 않고 유일하게 합격한 사람이 바로 남편이 된 것이다.

 

남편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세상에 착한사람 복 받는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고 하루 늦게 낸 서류가 누가 그 날 시험을 치루는데 소방대원들 몽땅 다와서 하필 그날 체육대회를 할지 누가 알았냐고 하더란다. 당장 내일부터 출근이란다.

 

그 다음 날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나이트근무니까  집에 있는데 한 열시 되니 남편이 집에 돌아 온 것이다. 그것도 다른 직원들 모두 함께 왔으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했다.

" 집에서 근무하고 퇴근은 이따 시청으로 해야 된다는 구먼"   

집에서 점심해먹고 오후에 어디 불 났나 안났나 동네 한바퀴 휘돌고 오후 5섯시 되면 시청에 퇴근해서 하루 보고 하면 일과 끝이란다. 그러니까 집에서 산에 불났나 안났나 그런 거 예방하는 거여 했더니 그렇단다. 불나면 그 때 가서 불꺼주면 되는 것이고, 매일 불나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니까, 늘 예방차원으로 동네 주변을 순찰하는 게 산불예방이란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있는 동네 구석구석 맨 산이다. 산에 올라가는 게 일이 된 셈이다.

 

그동안 지난 겨우내 농한기때도 남편은 집에서 나 없을 때먼 친구들 불러다가 그렇게 늘 잔치 치루듯이 밥해먹고 그러더니 이젠 아예 집에서 근무를 하게 생겼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럼 공무원인가 했는데 만일 공무원이 되었으면 이젠 나는 공무원 마누라인가? 헤헤..

 

어쨌든 지금도 남편은 집에서 열심히 산불예방 근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