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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모자른 마누라


BY 천정자 2011-07-05

요즘 건강식품, 웰빙, 무공해 유기농 등등 참 여러가지 다양한 기능성 식품이 줄줄이 나온다. 미안하지만 나같은 소비자만 살면 아마 위의 상품들을 파는 가게 부도가 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별 걸 다 걱정을 하지말라고 하지만 경제를 위해서 어느정도 소비는 좀 해줘야 농부도 살고 나라도 사는데.

 

시장에 가면 정작 필요한 것은 못사고 뭐를 사러 왔긴 했는데, 도무지 그게 영 생각이 안나서 결국 엉뚱한 것을 몇 번 사가니까 남편이 한마디 한다.

" 대체 정신은 누구한테 팔아먹고 왔나?'

그 없는 정신 팔으라고 한 놈도 없지만. 팔라고 해도 제 정신을 누가 값을 매길까 싶다.

가끔가다 남편이 담배사오라고 하면 대답은 막둥이 처럼 알았어 해놓고

집에 다 와서 아차차 담배 사는 걸 잊어버렸네, 뭐라고 핑계를 댈까 하다가 써먹은 것도 이젠 바닥이 났다. 나중엔 할 수 없이

' 오늘 담배는 굶어! 건강을  위해서 알았지?"

남편은 또 성질내면서 소리를 꽥지른다.

" 또 어디다가 담배를 팔은 겨? 정신을 홀랑당 딴 놈한테 또 넘어 간겨?"

그 말도 하도 들어 대답도 한 가지로 통일했다.

" 내일 사오면 될 거 아녀? 아님 본인이 직접 사다가 피던지?"

나는 밥은 끊어도 담배는 죽어도 못 끊는다며 니 내일 담배 안사오면  집에 못 들어오게 아예 문을 잠그다나, 나 원 참 문을 잠궈봤자 대문도 고장나서 항시 열린 집에 담도 없는 집인데 도둑이 들어도 민망해서 도로 튀어 나갈 집에 무슨 문을 잠그냐고.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마누라를 그까짓 담배때문에 집에 못 들어 온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나도 소리를 한 번 냅다 질렀다.

" 그래 나 담배 사러가서 안오면 담배만드는 공장에 취직한 줄 알어? 만들어 올테니 그 때까지 문 꼭 잠그고 꼼짝말고 기다려 안 그럼 집에 안들어 올 줄 알고 있어!"

 이렇게 싸운 것도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 이젠 으례 그러려니 서로 합의한 내용뿐이지만, 진짜 내 정신을 누가 도매금으로 사갔나 깜박깜박하는 게 나도 내가 누군 줄 모르게 정신 못 차리겠다 싶었다. 남편도 좀 걱정 되나 심부름 시키면 꼭 다시 전화한다.

" 니 내가 뭐사오라고 했는지 기억나냐?"

해마다 여름이 오면 꼭 필수품으로 사야 되는 모기향이다.

그런데 이 모기향을 몇 번이나 사러 나와도 그걸 그냥 잊어버리고 또 집에 빈 손으로 들어오는 걸 보니 마누라인 나를 정상으로 보는 눈빛이 아니다. 

이젠 아예 병원 좀 먼저 가보라고 하니, 그 병원에 매일 출근하는 사람보고 병원가라고 하니 나도 헷갈릴 뿐이다.

 

남편이 아예 같이 큰 맘먹고 같이 쇼핑하자고 나서고 나는 그냥 줄줄 뒤만 따라 다니니까  살림을 누가 하는 줄 모르겠다고, 만약에 너 혼자 살게 되면 뭐 할 줄 아냐고 또 그 잔소리는 굳쎄게도 주구장창이다. 이상한 것은 나는 쇼핑을 하러가면 피곤하다. 눈도 피곤하고 발바닥도 아프고 그러니 뭐사는 것이나 마나 세상만사 다 귀찮은 표정이니 남편도 그게 싫었던 모양인가 진짜 필요한 것만 딱 고르고 얼른 가잖다. 나야 좋지.

 

냉장고가 항상 반은 비어있다. 먹을 반찬이 없단다. 없긴 왜 없어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면 충분하고 된장에 간장에 요즘 텃밭에 상추에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그걸 그냥 바로 겉저리 해먹어도 휼륭한 반찬인데,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고 일하러 다른 집에 식사를 하면 반찬이 상 한가득인데, 왜 우리집은 그런 성의가 없다고 타박이다. 요즘에 남편이 반찬투정해서 받아 주는 딴 집이 또 생겼나,

이 남자가 갑자기 마누라가 좀 모자른 살림치인 걸 잊었나, 나 아닌 딴데 반찬 잘하는 마누라 두고 왔냐고 하니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되레 성질 부린다.   그렇구만! 내 알아볼거라고 하니까 더 성질낸다. 그러게 왜 내 성질은 건드리냐고. 흐흐

 

그나마 요즘 이 시대에 이빨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세상인데.

나 같은 마누라 하나라도 있을 때 잘 혀..

근디 왜 우렁 안 잡아 와?

요즘 그 우렁을 듬뿍 넣고 된장찌게 바글 바글 끊여가지고 먹음 열첩 보약 저리가란데, 내 담배 사올테니 우렁 당장 잡아 오라고 하니 남편이 기가 막힌 건지 말문이 막힌 건지 아무 말 안한다.

 

오늘 저녁엔 우렁된장찌게 끓여서 같이 먹자고 하니까 설래설래 자전거 끌고 논에 나가는 남편 뒷모습을 보니 즐겁게 자전거 타고 가는 것 같다. 이건 내 생각인 줄 모르지만..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