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불어 우리집 살구 다 떨어졌다.
새콤한 살구 좀 올해는 좀 먹어볼려나 잔뜩 기대했더니 바람이 워낙 힘이 쎘나
왕창 우수수 시퍼런 살구가 땅바닥에 다 떨어졌다.
고추도 파헤쳐진 것처럼 푹푹 쓰러지고. 왕토마토인 줄 알고 심은 것이 방울토마토라고 괜한 종묘장수만
욕 한바가지 했었는데. 그나마 큰 가지가 찢어져 푸른 토마토가 댕알댕알 매달린 것이 다 허사가 되었다.
하긴 괜히 태풍일까 싶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자연의 힘을 감히 무시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인데.
땅바닥에 떨어진 푸른 살구을 주워 바구니에 담았다.
간기능이 부실하거나 신장기능이 신통치 않은 분들한텐 이게 약이 된다니까.
푸른 살구에 설탕을 넣어 마치 매실엑기스처럼 만들어 놓으면 감식초처럼 시다. 마찬가지로 푸른토마토도 식초를 만들어 마시면 간기능이 많이 완화된단다.
이걸 물에 타서 장기 복용하면 간에도 신장에도 부실한 기능이 회복이 된다니까
일단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좀 줘야 되겠다.
미리 준비하라고 일부러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내 경험에 내가 심어 내가 다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신통방통하게 적시적소에 필요하다면 그 때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엔 짠하고 나타나고 해결되는 것이 참 많앗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오가면서 만난 사람들이 꼭 눈에 띄게 도와 준 것은 없어도 보이지 않는 기도와 서로 밀어주는 힘이나 기운들이 꼭 수치로 나타내야 알 수 잇는 것들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그걸 몸으로 느끼고 말없이 사는 것이다.
마당 이구석 저구석 바람이 안 설쳐댄 곳이 없다. 들깻잎도 찢겨지고 오이도 줄기가 모두 아래로 축축 쳐져 이젠 오이도 몇 개 못먹겠구나 했다. 노란 오이꽃도 다 떨어져 바람에 날아갔나 바닥에 흔적도 없다.
그래 이 태풍이 불어야 뜨거운 여름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순서라면 절대 빼먹지 못할 과정이다. 떨어진 푸른 살구에 가지꺽인 푸른 방울토마토를 줍다가 작년에 화분에 떨어진 채송화가 이제 주황색 꽃잎이 꼭 입다물고 있다가 꽃잎 벌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새초롬하다.
세상에 간 밤에 그렇게 지붕이 날아 갈정도로 태풍이 분 이유가 얇디 얇은 채송화 꽃잎을 피울려고 그 난리법석을 부렸나보다. 오매 어쩜 이렇게 이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