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까 시원한 바람도 분다.
시골에 오래 살다보니 푸른 바람도 이젠 읽을 줄 안다.
아니 보인다. 확실히..
내 친구중엔 비오는 날 번개치면 제일 싫단다.
왜냐고 물으니 벼락 맞을까봐 그렇단다.
무슨 죄를 크게 저질렀냐고 했더니
나를 쬐려 본다. 니 나를 의심하는 거여?
벌써 유월이 중반을 지나 한 주만 지나면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이다.
울 딸은 그 새 키는 영 클 기미는 안보이고 자꾸 허리만 굵어질려고 한다.
이 번엔 내가 운동 좀 단단히 시켜야지.
그래도 비오는 날은 적당하게 키가 큰 애기 쪽파하고 이왕이면 바지락도 솔솔 얹힌 파전 부침개와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난 후 비오는 날 참개구리 왁왁 대는것도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실컷 듣고 비구름에 별이 감춰져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자리가 어떤 별자리였더라 짐작도 해보고 그렇게 하루는 보내고 싶은데.
무슨 놈의 팔자인지 집은 분명히 시골인데 이 몸은 딱딱한 시멘트로 도배된 도시에서 입맛만 다시고 있을 줄이야..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니 우리집에 사는 사고뭉치 복순이도 비를 피해서 고개만 문턱에 걸치고 비오는 풍경을 지켜보다가 눈이 스르르 감겨 졸테고, 하루종일 낮잠만 자는 순님이가 하품을 하고 먼 산 쳐다보는 눈빛도 어리어리하다. 사월에 심은 오이며 참외며 한 참 푸른빛으로 몸 키울텐데 지금 당장 딴 오이 향기가 기가막힌데 남편에게 전화나 해야 겠다. 그 오이 내가 따서 먹을테니까 절대 먼저 따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야 하고,해마다 심지 않아도 저절로 크는 들깻잎 따서 깻잎김치도 담아야 하는데 이거 머릿속에 오히려 심란해질려고 한다. 여름풍경은 매양 매 년 마다 같은 풍경임에도 이렇게 객지에 나와서 보니 그 때 그 만큼 행복한 때도 다시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대전화에 졸고있는 복순이도 이제 나이도 짐작 안가는 늙은 개사진도 동영상으로 한 컷 박아놓을 걸 그랬다. 심심해서 열어보면 적적할 때 대비해야지. 매양 똑같은 상황인 것 같은데도 지난 세월을 보면 같은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저 내 생각만 멈춘 것이다.
비오면 꼭 우산을 잃어버리니까 나에게 남편은 잃어버려도 괜찮은 헌 우산을 준다. 그런날은 잘도 챙겨 온다. 거참 새우산은 잘도 잃어버리고 헌 우산은 어디다가 버리고 와도 아깝지 않은 것을 끝까지 잘도 챙겨 집에 돌아온단다. 남편이 나보고 참 용하단다. 연구대상이라나..
그래도 새우산은 달라지 못한다. 준다고 해도 못가져간단고 한다 왜냐하면 새 우산은 가지고 나가면 그 날 비가 오다 말고 나는 화창한 날 개인 햇볕에 홀려서 우산을 가져왔는지 잊어먹고 어디다가 흘렸는지 모르고 집에 돌아온다. 이렇게 한 열 개의 새우산을 잃어버렸으니 남편에게 연구대상이 된 것이다.
뜨거운 태양의 빛과 잃어버린 새우산과는 아무 상관없음에도 나는 줄기차게 관계있다고 변명을 여태 남편에게 하고 있다. 남자가 여우에게 홀리면 정신 못차리잖어..그거랑 비스무레한 겨..헤헤..남편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러니까 넌 헌우산만 쓰라니까!
언젠가는 비 많이 오는 날 새우산을 쓰고 빗방울 고인 웅덩이에 첨벙 첨벙 발담그며 놀고 싶다고 했더니 드디어 제 정신줄을 하필 비오는 날 노치냐고 애들같은 소리한다고 되레 놀린다.
누가 아냐고..더구나 시골에 사람도 안 다니는 길에 혼자 비를 맞던 말던 누가 보기나 하겠냐고 난리부르스 춘다고 해도 누가 보기나 하겠냐고 했더니 진짜 그렇게 할려냐고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이 마누라가 아무래도 뭔 일 저지를려고 그러나보다 하는 눈치다.그 땐 그렇게 비오는 날 남편하고 이런 저런 애기고 하고 막걸리가 떨어지면 동네 주조장에 한 통 받아와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하루가 저문 적도 있었는데, 요즘 그 때 기억을 하니 정말 행복한 때구나 했다.
조만간에 얼른 다시 우리집으로 내려 가야지.
아이구 돈이고 나발이고 뭐니뭐니 해도 식구랑 오손도손 같이 사는 게 젤이다 이런 생각이 절절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