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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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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혈액형


BY 천정자 2011-06-02

남편의 친구가 바람이 나서 요즘  내 남편이 더 정신이 없었단다.

툭하면 이 친구가 밤이고 낮이고 아무때나 불러대

내가 왜 지금 사는 여자가 싫은지 뭐 때문에 이혼을 해야 하는지

한 석달간 시달리다 시달리다 결국 남편이 한 마디 했단다.

" 야 이눔아 그래도 니 자식 낳아준 마누라가 젤이여~~~"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다고 하지만 나이들어 봐라 이 눔아 니가 환갑이 낼 모레인데

니 자식 낳아준 여자가 너 챙기지 잠시 오다가다 만난 여자 너 돈떨어지면 말짱 황이여

긍께  여러소리 다 집어 치우고 니 마누라 죽으면 넌 홀아비가 되고 요즘 혼자 사는 남자가

기죽고  사니께 니가 알아서 니 가정 잘 관리혀 ..

 

남편이 나를 보고 그런다. 친구 부인이 참 이쁘게 생겼는데

욕을 너무 잘한단다. 처음엔 정말 깜짝 놀랏단다. 저렇게 상욕을 해대니까  친구가 바람이 난거라고 잠시 오해를 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의 친구가 원인제공자였고, 뭐든 양쪽 상황을 다 파악을 해야 누구말이 옳든 그르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땐  정말 남편 친구는 너무 몰라도 모르더란다.

 

남편의 충고를 처음엔 친구는 고깝게 생각했었나 한동안 연락이 안 오더란다.

그 후 동네 구판장에서 친구부인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렇게 반가워 하더란다.

괜히 남들에게 오해 받을정도로 인사를 하고  언제 부부동반해서 술 한잔하자고

해서 그냥 그렇게 인사치레를 하는 줄 알았단다. 

 

몇 칠 후에 우리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남편의 친구부부가 찾아 온 것이다.

나도 그 때 그 부인을 처음 보았다.

나를 보자마자 그런다.

" 세상에 이렇게 착하게 생기셨네 처음 뵙겠습니다. "

나보고 이쁘게 생겼다는 말은 한 번도 못들었지만, 착하게 생겼다는 그 말은 진짜 무진장

들었는데, 진짜 남편의 말대로 부인은 미인이었다.

우리를 차에 태우고 근처 동네 포장마차에서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를 마시는데

어느정도 취기가 올랐는지 갑자기 이 남편의 친구 부인이

엉엉 우는 것이다.

 

' 내가 결혼해서 남편과 같이 외식한 번  못하고 신혼여행도 못가고 덜컥 생긴 아들 낳아 줬더니 어떤 놈이랑

화냥질해서 낳았다고 시집살이를 엄청 당하다가 당하다가 결국  울 아들 일곱살 때

학교에 보냈는디 세상에 학교에서 건강진단하잖아요? 그 때 애 혈액형이 B형라고 하는데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지 아들하고 내가 가출을 하고 난 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나도 처음듣는 애기라 어리벙벙하고 옆에 남편과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되묻고 싶어도 꾹 참았다.  그렇게 십년 세월을 보냈는데. 이젠 그 아들이 대학생이다. 그 아들이 그러더란다. 엄마! 그래도 내 아버지 맞지? 그러니까 내 친아버지 맞잖아? 피는 정말 굵고 질긴 밧줄보다 더 땡긴다고 하더니 다시 그 아들 때문에

살림을 합쳐서 지금은 그 아들이 대학 기숙사에 대학생활을 하고 있고, 그렇게 살림을 합친지 이제 겨우 삼년째란다.

 

남편도 나에게 전부 애길 하지 않은 것이다. 차마 그런 남의 상처가 된 사연을 입에 올리지 못한것인데, 이렇게 마주보고 그 애길 듣다보니 이젠 이해가 간다. 왜 그렇게 욕을 하고 다니고 늘상 남편보면 그 말도 안되는 과거사가 떠올랐을테니 아들때문에 아들 대학 졸업하고 자리만 잡아주면 내가 보란듯이 얼른 이혼을 하고 혼자 살려고 했었단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남편의 한 마디 충고에 그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단다.

그 많은 상처들을 제공한 장본인이 나라는 것을 안 이상 더 이상 뭘 더 잘 못한다고 한들

그래도 내 아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더란다.

남편의 말대로 내 아들 낳아 준 내 마누라가 진짜 가족인데

내가 너무 몰라도 몰랐다고 한다. 

그래도 이 만큼이라도 같이 살아주는 게 고맙단다.

어휴~~ 정말 같이 오래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 부부를 보니 정말 실감이 난다.

 

그렇게 술자리를 끝내고 늦은 시골길을 천천히 남편과 함께 걸어 돌아왔다 .

돌아 오는 길에 개구리들이 논바닥에서 왕왕대고 하늘에 별들은 콕콕 박혀 반짝반짝 빛나고 공기도 진짜 상쾌하다.

 

남편도 얼큰하게 취했지만 나도 알딸딸하다.

이런 분위기에 무슨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앗다.

 

그런데 그 아들 혈액형때문에 그렇게 가출했다는 말에

문득 울 아들 혈액형이 뭐지?

이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남편이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 그러게 이 눔 혈액형이 뭐지?'

" 아니 자기도 몰라?"

 

어휴~~ 진짜 이거 우린 더 기가막힌 부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