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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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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담그기


BY 천정자 2011-03-31

" 니가 시집와서 된장 한 번 담궈봤어? 고추장을 해봤어? 엉?"

남편은 툭하면 나에게 시비건다.

그렇게 말하면 시어머니는 된장이나 마나 간장 고추장까지 시장에서 다 사서 먹는데 왜 나에게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하냐고 따졌다.

언제는 니가 시집와서 마당을 몇 번 쓸었냐고 하더니 이젠 된장 고추장 못 담군다고 타박이다. 나도 이 경력이라면 할 말 많다. 진짜 속으로는 요리도 잘 해보고 싶고, 된장 고추장 그 까짓거 하면 된다 이렇게 큰 소리 치고 싶은데. 주부경력 21년차면 뭐하나 일단 머릿속이 깜깜 무소식이다. 그렇다고 된장을 안먹냐 것도 아니다. 요즘 냉이가 나오는데 냉이넣고 구수한 된장을 풀어 보글 보글 끓여서 한 수저 딱 입에 넣으면 이걸 어떻게 싫어하냐고. 좀 있으면 우렁도 스멀스멀 기어 나올텐데 거기다가 막된장을 만들어 비벼 먹으면 누굴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그 순간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만의 된장도 담고 싶은데 이게 엄두도 안난다. 다른 집들은 삼 사월만 되면 된장에 고추장 담근다고 난리라는데, 울 집 여편네는 엉뚱한데나 신경쓰고 다니느라  집안 살림에 영 젬뱅이라고 남편은 늘 잔소리하는 덕분에 정말 나는 그렇게 되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잡을 게 아니라 나에게 잔소리 하지 말고 직접 하지 왜 맨날 나만 닥달하냐고 부부싸움 하다보니 이게 매년마다 치루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울 엄마가 주신 된장도  얼마 안남았다. 이걸 좀 아껴 먹어야 되나 은근히 걱정되기에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되는데 내가 금방 결혼한 새댁도 아닌데 이미 시집가서 오래되고 이젠 엄마랑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딸한테 언제까지 된장 고추장을 공수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구 울 엄마 돌아가시면 내가 먹는 된장은 어디서 사먹을 수도 없고.

 

남편 잔소리에 늘 화만 내다가 이젠 내가 되레 남편에게 따졌다.

" 자기야? 나는 장 못 담그는 거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디 진짜 자긴 된장 무진장 먹잖아 그러니까 메주 만드는 법을 당신이 만드는 거 어디서 배워와라?"

울 남편 어이없나 나를 꿈벅 꿈벅 눈만 뜨더니 또 소리를 꽥 지른다.

" 딴 집은 여자가 담그는디 시방 지금 뭔소리여?"

 

아무 상관없는 딴 집애긴 뭐하러 하냐고 했다. 다 나름 사정다르고 천차만별인 다양한 시대인데 꼭 여자가 살림만 하라는 법은 옛날 애기고, 나같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 어디서 된장 담그는 비법의 명강의 들어도 집에 오다가 다 까먹는데, 그래도 당신은  나보다 나으니까 된장 잘 만드는 집에가서 메주를 사오든 뭐를 해야 자급자족을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 남편이 한참 곰곰히 생각하는 눈치다.

 

울 남편만큼 나를 잘아는 사람은 울엄마 외에 없다. 뭘 사오라고 시키면 이박삼일이란다. 심부름 시켜도 단박에 이뤄진 적 없는 세상 천하태평인 마누라를 된장 만들어 보라고 시켜도 느려터져서 또 몇 년은 걸릴 것이고, 아쉬운 사람이 샘판다고 결심을 한 것처럼 나에게 한 마디 했다.

 

' 올 해는 밭에 콩을 심자?" 남편의 말에 나도 놀랐다.

내가 된장 담그라는 말에 충격먹었나보다.

" 아니 왠 콩을 심어?'

" 니가 된장을 못 담그면 콩을 심어서 장모님 갔다주고 담가달라고 해야 될 것 아녀? 콩밭에 풀은 니가 관리해라? 땡땡이 까지말고 알았지?"

 

아니 이게 아닌데..난 된장만 담구는 거 배우라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