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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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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가...


BY 천정자 2010-12-12

 

자꾸 어디 조용한 곳으로 한 동안 꽁꽁 숨어 조용히  살다가 가고 싶다.

좀 주책도 떨고 실컷 게으름 부리고

늦은 아침밥상 머리에서 남편한테 늘 듣는 잔소리

지금 아침이냐? 새참이냐?

 

어디 일 나갈 바쁜 모내기철도 아니고

나락 다 걷어 가버린 빈 들녘에서 부는 바람소리만 생쌩 나는 

한가한 겨울  아침인데, 새벽부터 밥 하라고 조른다.

 

옛날 구들에 무쇠솥 걸린 부뚜막에 장작 몇 개 올려 밥해먹는 그런 시대는 아닌데

사람의 오래 된 생각엔 닭이 홰치면 무조건 일어나는 습관이 유전되었는지도 모른다.

 

전기밥통 버튼만 한 번 꾸욱 누르면 밥이 맛있게 되는 이 편리한 세상에

빨래도 단추만 한 번만 누르면 만사오케이고

안방에서 배깔고 누워서 리모콘만 누르면 지구촌을 구석구석 누비며 벼라별 세상을 다 촬영해서 새삼스레 따로 궁금하지 않게 하는  식상함에 질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선가..

자꾸 혼자 어디 조용히 말 없이 살라는 청산은 이미 남들이 다 가 봤을 것이고.

유명한 곳은 이미 길이 나버려 사방팔방 다 연결되었을텐데.

굳이 찾는다면 아직 무명으로 이름나지 않아 누가 봐도 그냥 휙 지나칠 그 곳에

내가 엉덩이 눌러 앉아 버릴까 이런 궁리만  하다보니

남편이 보기엔 마누라 하나 있는 것이 어째 좀 모지리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할 것 같다.

 

남들은 어떻게 해야 자식들 잘 가르치고 한 평수라도 더 넓혀 든든한 노후대책에 여념이 없다고

난리라는데, 어떻게 허구헌날 어디 자빠져서 허리피고 노는 궁리만 하냐고 그런다.

나도 남편에게 대답을 해야 하긴 하는데

우물쭈물 별 뾰족한 대답이 없어 겨우 한 마디 했다.

" 거 남애긴 나랑 무슨 상관인디.." 

 

중요한 것은 내가 편하면 그만인 세상인데, 거기다가 남 눈치보고  대학 들어가야 되고 취업도 남과 피터지게 싸워 물리쳐야

겨우 승리한 개선 장군처럼 살 수 있는 세상인데 굳이 나까지 거기에 나서라고 한 법도 없을테고. 흐흐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중에 금으로 만든 틀니를 하신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위독하니까 보호자가 와서 하는 일이

아버지 틀니를 먼저 챙기더란다. 원래 위독한 중환자는 의치를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돌아기시면 어차피 가져가지도 못할 그 무엇도 없는 것을 알지만 참 하루 이틀 그냥 컵에 물 담아 담가두어도 되련만, 금값이 너무 올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걸 보니 나도 어차피 나이들면 이빨 다 빠지면 틀니를 해야 할텐데 지금이라도  잘 치아관리를 잘해서 죽어도 넣다 꼈다 못하는 걸로 할까 이런 생각도 하다보니 우습다.

 

남편한테 그 애길 했더니 으이그 죽어도 말 못해서 죽었다고는 안 할 거다 그러는데

말 못해서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 안 하는 것은 언젠가 때를 기다렸다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남편의 말도 일리는 있다.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살아도 아무래도 나는 여전히 시끄러운 여자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입만 살아서 조잘조잘 잘 떠들어야 잘 사는 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