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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와 붕어빵


BY 천정자 2010-11-17

한 곳에서 붙박이처럼 오래 살면 나만 잘 아는 곳이 생긴다.

구두가 굽이 떨어져 너덜너덜한 가죽이 찢겨진 것을 들고 한 십이 년 동안 단골로 다니는 구두방 아저씨는 이제 칠순이 다 된다. 다른 사람의 구두만 보고 늙었다고 내 구두를 보면 꼭 한마디 말씀 하신다.

"어딜 그렇게 쏘다니길래 구두가 다 떨어져도 모르나..?"

그렇게 울 남편과 똑같은 잔소리를 하시면서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신곡이라며

노래에서도 폼나게 산다는 세상인데, 이 참에 새 구두를 사 신으라고 너스레를 떠신다.

구두를 이리저리 살펴 보시면서 굽만 갈면 올 해는 그럭저럭 잘 버티겠다며 잽싼 손놀림으로 망치를 들고 작은 못을 쾅쾅 딱 두 번만 박으면 구두가  멀쩡해진다.

" 얼마예유?"

" 삼 천원!"

전에 1500에서 이젠 삼천원이라 많이 올랐지만 하긴 세월이 십 년하고도 또 삼 년 째 들어서니 아저씨도 많이 늙었다. 서비스라며 구두약을 듬뿍 발라 내 구두 앞코가 반짝반짝 윤이난다. 기분이 좋다.  그 구두를 신고 내가 1000원어치 달라고 하면 통째로 숭덩 잘라주는 순대 파는 데로 간다. 여기는 노점인데 시장안에서 한 이십여 년을 순전히 순대만 만들어 파는 집이다. 지금은 1000어치는 못 판단다. 적어도 일인분 2000원이란단다. 구두굽이 삼천원인데, 순대라고 별 수 있나 나는 그래도 별 말없이 그럼 일 인분 주세요?

 

부부가 한결같이 같은 종목으로 길게 장수하는 순대집은 아줌마가 은근히 후덕하다. 말은 분명히 천원어치 못 준다면서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간에 허파에 오소리감투도 슬쩍 몇 점을 순대 밑에 감춰두고 염통도 줄까? 그렇게 물으면 나는 슬쩍 묻는다.

"혹시 일 잔도 돼유?"

그럼 그럼 당신 마시다가 얼른 다시 뚜껑막은 순도 높은 소주 한 잔을 따라준다.

오래된 단골은 으례 그러려니 일부러 더 챙기나보다.순대 파는 아줌마 딸이 얼마전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미 큰 외손자를 낳고 몸 풀고 난 후 결혼식을 해서 그런가 얼굴이 영 붓기가 안 내려 앉아 화장이 잘 안 먹었다며 평생 남을 결혼사진에 딸 내미 얼굴이 사위얼굴보다 더 크게 나온 애길 하신다. 순대 아줌마의 수다를 듣다가 한 잔, 순대로 안주하다가 또 한 잔 그러다보니 시간 가는 것 누가 아나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고 다 먹었으니 얼른 집에 가야지 얼마예유?

" 응 삼천원만 줘!"

그러니까 순대 이천 원, 소주가 석 잔에 모두 삼천원이다.

 

일어서니 드르륵 손전화에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 엄마 붕어빵 먹고 싶어~~꼭 사와~~~"

으이그 이 눔의 딸내미는 빵집에서 태어나면 원이 없겠단다.

날마다 빵타령이다. 특히 겨울만 되면 붕어빵은 아주 대놓고 날마다 사달란다.

말 안들으면 붕어빵 안 사줄겨? 이러면 얼른 말 듣는다고 아양이다.

붕어빵 만드는 아저씨도 울 딸을 잘 안다. 어렸을 때 그 붕어빵틀을 쳐다보고 그랬다.

왜 붕어빵은 물속에서 안 살아요? 했다. 물 속에서 살지 않는 붕어빵만 구워 벌써 25주년이란다. 붕어빵 팔아서 애들 다 가르치고, 집사고 부자가 되셨는데, 하긴 울 아들이 스므 살인데, 옛날 붕어빵 틀은 무진 크다. 요즘 붕어빵은 그 크기의 딱 반이다. 그 만큼 양이 많다. 그래도 갯수는 벌써 두 개나 줄었지만  그래도  천원에 다섯 개다. 우린 오랜  단골 브아이피 고객이고 딸이나 아들이 직접 가면 덤이라고 하나 더 주는 아저씨다.

 

" 울 딸이 오늘 붕어빵 꼭 사오라고 했어유 헤헤"

" 어이구 어서 오셔유!"

 

종이 봉투에 여전히 천원어치는 아직 나에겐 가득이다. 뜨근한 붕어빵은  우선 머리부터 먹는다. 대게 단팦으로 만든 속이 몽글몽글하게 두툼히 뭉친 곳을 한 입을 먹고 나머지는 꼬리베어 먹는 딸내미 보고 나도 그렇게 따라 먹었다. 이젠 겨울이 곧 닥칠 것이다. 그렇지만 추워도 아무리 한냉전선이 전국에 깔려도 오래오래 이겨 낼 수 있는 따뜻한 기온은 감출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