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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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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무침


BY 천정자 2010-08-12

남편이 가지와 제법 애늙은 호박을 따 왔다.

" 니 내일 아침에 꼭 가지무침하고 장 지져야 한다! 엉?"

잠 많은 마누라 덕에 아침을 챙겨주는 날보다 그냥 각자 셀프로 챙겨 먹는 날이

더 많기에 나도 늘 미안했다.

" 알았어!"

나는 대답은 너무 잘한다.

내가 무친 것은 맛이 없어도 끝까지 먹어주기

아니면 다시는 안 해준다는 말은 안 했지만

나나 남편이나 오래 같이 살다보니 비스므레 식성이 닮아 가나보다.

가지무침을 어떻게 무쳐야 맛있을까? 물었더니

한 번 삶아서 죽죽 찢어 무치면 되지? 이런다.

옛날엔 이런 애길 하는 남편을 보고 그랬다.

그럼 할 줄 아는 당신이 한 번 무쳐 봐? 시범을 보여줘야 내가 따라하지?"

헤헤..멋도 아무것도 모르는 칠칠이 팔푼이 마누라를 그 동안 데리고 사느라 울 남편 참

고생했다고 고마운 생각이 들어 낼 아침에 보글 보글 된장찌게도 끌이고 가지무침도 해주고 그래야지 하고 잠을 잤는데.

 

한 새벽 다 섯시가 좀 넘었나보다.

남편이 발로 툭툭 엉덩이를 차면서

" 날 뜨거워지기 전에 밥먹고 가야 하니께 빨랑 가지 좀 무쳐 봐?"

나는 벌떡 일어났다. 너무 빨리 머리를 곤두세웠나 머리가 띵하다. 어지럽다. 어리버리한 내 얼굴을 보더니 남편은 또 소리를 꽥 지르네.

알았어 알았다구 누가 안 해준다고 했어? 나도 궁시렁 거리다가가

주방에서 또 궁시렁거렷다.호박을 먼저 된장을 먼저 지질까? 가지를 먼저 삶을까? 우선 가지를 두 갈래로 칼로 짜르고 두 번 짜르면 맛이 안 날까? 그냥 통째로 삶어? 에라이 모르겠다 싶어 찜발이에 일단 가지를 얹어 놓고 가스벨브를 돌리고 켰는데. 이거 불이 영 안 켜지는 것이다.

요즘 장마철이라서 눅눅해지면 불이 접촉이 안될 경우에도 불이 안켜진다고 애긴 들은 적이 있지만. 라이터를 켜서 가스주입구에 들이대도 불이 안켜지니까 할 수 없이 남편을 불렀다.

 

짜증나는 목소리로 밥먹으라고 불르지 왜 불러? 이러는데

"자기야 가스불이 안 켜져?"

" 뭐? 그럼 가스 떨어진건지 얼른 뒤에 가봐야지? 

 

쪼르르 뒤란에 가서 가스통을 흔들어 보니 힘없이 흔들린다.

내가 가스를 언제 시켰나 생각 해보니 생각 날리가 있나? 내 정신이 워낙 없는 거 울 동네 사람들도 알아주는데.

" 자기야? 어떻게 해? 그냥 김치에 밥먹어?"

 

이미 남편은 구시렁거리며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 이그이그..내가 아침부터 무슨 가지무침을 먹을 것 같지 않더라?"

그 말 듣고보니 그러네. 다음부턴 가스 시키는 날 적어놓고 확인할 거라고 했더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 연습하란다.그러지유 헤헤..

" 오늘 가스 시키는 거 까먹지마? "

" 응 알았어! 가지무침 맛잇게 해 놓을께 ! 약속!"

남편 어이없는 얼굴로 나랑 새끼손가락을 걸고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