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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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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BY 천정자 2010-07-21

고상한 것을 좋아한 적은 없는데 요즘 자꾸 고상한 것을 보고 싶고

옷도 좀 우아한 것으로 골라 입고 싶고

애들만 보면 입이 헤벌쭉 벌어져 애 하나 더 낳고 싶다고 햇더니

울 남편 단 한마디

" 넣어 둬!"

 

나도 막말로 어따가 넣어두냐고 도로 반박을 하고 싶은데

날도 덥고 비가 오려나 물기 잔뜩 묻은 축축한 바람도 끈적거리고

오늘 저녁엔 좀 늙은 애호박 오래 지져낸 된장찌게 끓여 먹을까 했더니

남편이 나간다. 어디가냐고 했더니

" 봐 둔 호박 따러!"

 

마당에 세워둔 자전가를 끌고 나간다.

바로 옆에 있는 호박을 따러 자전거 타고 나가냐고 하니

우렁도 몇 마리 넣고 끓여야 한다며 모자를 푹 쓰고 대문을 나간다.

 

남편이 없는 새에 나는 밥도 앉히고 얹저녁에 고양이 들어 온 것 닽은데

아무소리도 안나고, 아침밥도 안먹고 또 어디로 쏘다니나 그것도 궁금하고.

또 암내가 난다고 하는 복순이를 유심히 보니 복순이 얼굴에

" 나를 왜 그리 쳐다보나?" 이런 표정이다.

싱드렁하고 별로 느낌도 없는 덥고 축축한 여름저녁에 나는 마당을 요리 저리

구석구석 들깻잎도 따고 덜익은 노란참외는 엉덩이가 돌도 안된 아기 몽고반점처럼 푸르딩딩해서

햇볕에 잘 익으라고 뒹굴게 하고 풋고추가 열리기 전 하얀 꽃이 어쩜 그렇게 꼭짓점이

다 섯개인 그림별처럼 똑똑하게 생겼다.

 

으이그! 나도 어지간하다. 따다가 먹을 줄만 알지. 그들이 꽃피고 그 꽃진자리에 맺힌 열매들이 도톰하게 살이 오를 때까지 이 뜨거운 여름햇볕을 얼마나 쬐고 화상을 입어야 제대로 색을 입힌 과일이 될 것이고, 채소가 될 것인데.

 

오이꽃도 새초롬하니 노란색인데. 꼭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색보다 더 빛난다.

나보다 더 이쁘고 모두 한 자리 제대로 잡아 한 몫을 하느라 수고하는 것에 또 놀라고

언제까지 나에게 이렇게 오든 저렇게 가든 당장 없으면 내가 당장 아쉬운 것들인데

몰라도 너무 몰라줬다.

 

갑자기 겁난다. 한 마디의 말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든다.

꽃이야 말을 못해도 누가 닥달을 할까 싶지만.

나와 다른 모습으로 생명을 입고 태어난 이유가 분명이 있을텐데

말 잘하는 것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은 잘 말을 골라야 한다는 어느 선승의 말씀도

떠오르고.

 

논에 갔던 남편이 빈 손이다.

" 아니 호박이 없어? 왜 그냥 와?"

" 언 놈이 다 따갔나 벼 한 개라도 남겨두지 그걸 몽땅 따가냐?'

또 목소리 높힌다.

 

그려 나만 입있나  그동안 따 먹은 호박도 얼마나 많을까 . 그나저나 울 집 호박은 아직 어린디 좀 기다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