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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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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못하고 못생기고 돈도 없는데


BY 천정자 2010-07-14

" 세탁기에서 빨래가 마르든 곰팡이 피든 난 물러? 엉? 여편네가 정신을 어따가 팔아 먹은건지, 해 준 빨래도 못 너냐? 엉?"

헤헤,,울 남편 또 잔소리에 고래고래 소리부터 지르는 소리다.

엊그제 분명히 세탁기 돌렸으니 빨래 널라고 당부한 것을 대답만 응 해놓고 까맣게 까먹은 거다.

불과 몇 년전에도 한 살 먹으면 희미해진다는 기억이 이젠 하루차인가 어제도 뭘 했긴 했는데 뭐 했나 곰곰히 생각을 거슬러 더듬어도 앞이 하얗다.

 

어제는 물 주전자에 보릿차를 넣고 끓이다가 잠들어 하도 더워 눈 떠보니

주전자에 물이 쫄아 붙어 반쯤 남고 열이 주방에 찜질방처럼 더워져 난리가 났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고속으로 강으로 한 참 돌리고 나니 열기가 쪼금 빠진 것 같은데

그 때 마침 남편이 돌아 온 것이다.

 

" 냉장고에 시원한 물 좀 한 잔만 줘?" 했는데

그 훈훈한 열기가 느껴졌나 힐끔 내 얼굴을 보더니

" 니 또 주전자 태웠냐? 불 냄새가 나는디?"

그 코는 진짜 개코중에 복순이 코보다 더 후각이 진화됐나 .

 

그래도 대답은 제대로 한다고 엉겁결에 한것이

" 응 그래도 불은 안났어!"

" 아니 이젠 주전자도 태워먹고 남비도 그릇도 멀쩡한 게 없는디 살림을 하는겨 마는겨?"

 

살림을 나 혼자 하나 같이 사는 사람하고 알콩달콩 이런 일 저런 일도 생기는 거고 다른 부부들도 다 그렇게 살어 이 말도 이젠 한 번 더하면 과장한다면 한 백번을 했을 것이다.

하긴 한 이 십년을 한 집에서 동거동락을 하는데 반복된 잔소리는 아예 토씨하나 안틀리고, 레파토리도 순서가 정해진 것을 대충 알아서 듣다보면 이젠 저 애기 끝나면 그 다음 방에 들어가서 자야지 이런 수준까지 도달했다.

 

남편의 잔소리 중에 요즘은 이런 말 안한다.

" 니가 시집와서 마당을 몇 번 쓸었냐?" 의 대답에

" 한 두 번은 쓸었지 아마?"

내 대답에 남편은 마당 쓸고 있는 나를 한 번도 못 봤디고 박박 우기지만  

나한테 무슨 대답을 기대를 하건 말건 그건 그 때 뿐이라는 것을 아나 몇 년 전부터 스르르 사라진 잔소리다.

 

" 여태 니가 시집와서 한 게 뭐냐?" 이런 잔소리도 하도 해서

내 대답도 간단하게 했다.

" 아들 딸 낳았다! 뭘 원하는 디?"

이런 답을 원하지 않았을 남편 속 마음을 나도 짐작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일일히 피하는 것도 귀찮고 자꾸 반복되는 잔소리에 똑같은 대답도

질렸나 사라진 잔소리 중에 하나다.

 

요즘은 새벽에 날 뜨거우면 일 못한다고 나가는데 그래도 농사 짓는 남편을 둔 마누라가

좀 일찍 일어나서 새벽밥도 챙겨주고 그래야 하는데. 또 내가 누군가? 도둑이 들어 와서 자고 가도 모를 정도로 느러지게 잠만 잔다는 잠퉁이니 한 번은 남편이 그런다.

" 밥 좀 미리 해 놔라? 내가 알아서 먹고 갈테니까?"

 

그런데 남편보다 내가 좀 일찍 깬 것이다. 그 동안 잠자는 남편을

옆에서 입을 헤벌리고 자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불쌍해 보이고 측은해 보이는 것이다.

여름 태양을 피해 아무리 그늘쫒아 일을 해도 거울을 보니 남편은 흑인이고 나는 백인이다. 거기다가 주름살은 쪼글쪼글하고.

 

아이구 울 남편이 왜 이렇게 갑자기 늙어 버렸냐 싶고 괜히 속이 상하고 맘도 서글퍼졌다.

부엌에 나가 냉장고문을 여니 반찬도 마땅치 않고.

남편이 심은 오이며 고추며 상추를 뜯으러 나가보니

세상에 그 동안 그렇게 익지 않던 푸른토마토가 붉은기가 반지르르 돌고

그 옆에 개구리 참외가 주먹보다 더 굵어져 가고

애호박이 호박전을 부치면 딱 좋은 크기로 크고 있었다.

 

새벽에 금방 딴 오이를 쌈장에 푹 찍어 먹으면서 남편이 그런다.

" 어쩐 일이여? 나보다 먼저 깬 겨?"

" 응 이제부터 살림을 잘 하기로 마음 먹을려구?"

 

내 대답에 남편이 나를 물끄러니 쳐다본다.

아마 나도 많이 늙어보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