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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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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이 벌지 말자


BY 천정자 2010-07-04

"그러게 말여..

그렇게 악착을 떨더니 그게 지는 하나도 못 쓰고

남 좋은 일 만 한 거 아녀? 그렁께 내가 모은 거 다 못쓰고 죽는 것도 억울한디  쓸거 다 쓰고도 죽는 디 뭘 그렇게 아둥바둥 하는 거여?...쯔쯔쯔."

 

 사실은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을 거다. 상범 엄마는 이제 연세가 고희를 앞두고

그 동안 모아두었던 돈 일천만원을 홀라당 사기 맞었다.  늘 두고 두고 볼거라고 하던 그 낡은 통장에 잔고가 천만원이 다 될 무렵,  온동네에 시끌벅적 마이크 틀어대며 노랫가락을 틀어대던 약장수에 홀랑 털린거다. 여름저녁은 느리게 8시가 넘어도 캄캄하지 않다. 그런 걸 아는 약장수들은 에어컨 빵빵 틀어주는 대형버스를 동원해 동네 어르신들을 줄 세우게 하고 모셔다가 늦게 다시 동네에 모셔오는 통에

9시 땡하면 주무시는 노인들 밤잠이 짧아져도 피곤해도 또 가게 만드는 것이 분명히 중독성이 강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든 안사든 손에 무엇이든 집어주는 각종 생필품 선물모으기에 여념이 없다보니 집안에 곳곳마다 쌓아놔도 또 받아오고 받아오다보니 하루  안가면 그 쪽 소식이 더 궁금하게 되고 물어서라도 오늘 뭘 받았냐? 확인하는 어르신들의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 아이구 울 어머니들, 자식이 열 둘이 있어도 소용이 없는 거라요. 뭐니 뭐니해도  울 엄니들이 건강하셔야 넘들한테 대접받고, 자식들이 효자되고 자꾸 찾아오지, 골골한 부모 아픈 부모 밑에 한 효자도 긴 병엔 도망가도 내 탓이지 자식 나쁘다구 못하고 떳떳하게 어른노릇을 할 수 있는거 아녀라?

 이게 뭐시냐 하면 그 유명한 지리산에서 이 십여년 동안 양봉을 해서 기술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요. 그러니께 여왕벌이 먹는 화분인디. 이게 그 로얄제리라는 겁니다. 특히 만성 신경통에 욱신욱신 쑤셔대는 관절염에 특효입니다. 근디 이게 돈 있다고 다 사는게 아니라 이겁니다. 로얄이라는게 영어인디, 그뜻이 뭐냐면 왕벌이라는 겁니다. 그니께 귀하신 왕이 먹는 약이라는 것이니, 여왕벌이 이걸 먹고 수만개의 알을 낳는 겁니다. 그러니 좋은 게 다 들어 있다는거쥬. 우리가 갖고 있는 게 몇 개 안됩니다. 그려서 특별하게 제비뽑기를 해서 몇 분만 모실려고 하니께 많은 양해를 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이런 약장수의 달변에 안넘어 갈 노인 한 분도 없다. 모두들 성화다. 번호도 좋은거로 그것도 몇 개씩 받아들고 추첨표가 들어 있는 통에 모두 시선 집중이다. 이런 그림이 전국에서 노인들 상대로 벌어지는 약장수 풍경이 되었다.

 

 옛날엔 오일장이니, 있다는 양반네 너른 마당에서 펼쳐졌던 그런 따뜻한 정들이 짙은 사람풍경이 이젠 순전히 장사속이 숨어 있어 약삭빠르게 파고드는 것이 노인들의 건강을 갑자기 휘둘러 금방 죽을 것 같이 만들다가, 어떤 약만 잘 사먹으면 어느새 기사회생 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러니 울 상범엄마는 그동안 열지 않았던 통장에 있던 돈이 줄 줄 새어 나가더니 몇 개월 안되어서 텅 빈 깡통이 된 것이다.

 

 근처 딸기 따 주고, 인삼밭에 우르르 몰려 나가서 몇 칠 품 팔아서 그렇게 모았던 돈이 그렇게 말 잘하는 약장수 앞에선 큰 소리 한 번 못치고 고스란히 갖다 주었는데.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안 타지에서 사는자식들이 난리가 난 거다. 특히 상범은 자신의 어머니가 제일 많이 털린거로 더욱 속상하니 약장수가 있는 매장에 쳐들어가서 불 질르겠다고 신나통을 들고 갔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영업방해로 되레 파출소에서 곧 바로 경찰서로 이송이 된 후 느닷없이 밤중에 연락이 오니. 우리의 상범 어머니가 놀라서 찾아간 곳이 동네 이장한테 찾아가서 사정을 한 것이다.

 

 "아이구..울 아들이 지금 경찰서에 잡혀 갔다고 전화 왔는디 이를 어쩌면 좋누?"

 

 그 놈이 가라는 장가는 안가고, 하는 일마다 안되고 왜 허구헌날 경찰서에서 나를 부르냐구? 아이구 내 팔자가 왜 이다지도 팍팍 꼬이냐구? 이장은 밤늦도록 상범엄마의 하소연에 재촉에 잠 못들고, 이른 새벽에 물어 물어 경찰서를 찾아 갔더니 합의를 해야 한단다. 약장수를 어찌나 두둘겨 팼던지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고, 지금 합의를 안하면 폭력에 영업방해에 추가되어 교도소로 직행이란다.

 

 유치장에서 면회를 하더니 울 상범 엄마가 울상이시다. 돈도 약장수애 다 갖다 줫는디, 또 어디서 합의금을 마련하냐고 한 숨이 땅이 꺼지게 하신다. 그래도 어쩌랴?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한 곳을 찾아 가봤더니 맞은데는 별로 없고, 대충 보니 생으로 더욱 아프다고 꾀병 같은데. 이거 분명히 합의금 올려 받자는 수작이었다.

 

 다행히 내가 아는 의사다. 솔직히 묻고 싶은데, 경찰서에 디밀은 진단서가 정확하냐고 묻고 싶은데, 이거 괜히 눈치가 보인다, 하긴 의사도 진단서 한 장이 십만원인데. 그냥 대충 발부하지  않았을테고. 큰 형이라고 부리나캐 내려온 큰 아들 불 같이 성질만 더럭 더럭 내고 앉아 있으니, 울 상범 엄마 한 쪽 구텡이에서 작아진 가슴만 오그라지고 있었다.

 

 당당간호사에게 살짝 물었다.

" 보아 하니 전치 2주 아녀요? 저 환자분은?"했더니  담당간호사가 난처한지 머뭇머뭇하고 나는 또 물엇다. 대충 그런데, 본인이 한 주를 더욱 추가 해 달라고 하더란다.그래서 할 수없이 의사가 그렇게 해줬단다. 간호사가 자기가 말했다고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나도 참 이거 기가 막혀 화가 나기도 하고 앉아서 질질 우시는 상범엄마를 보니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으니

나쁜 환자 같으니라구? 지도 분명히 부모가 있을텐데. 그렇게 돈도 다 뺏어먹고, 이젠 아들까지 교도소에 쳐놓고 어쩔려고 그러는지 그 상판데기를 더 한 번 봐야 되겠다고 나는 입원실에 들어서니 중국집에서 짜장면에 탕수육에 만두를 시켜놓고 다른 문병 온 방문객들과 히히덕 거리는 것이 딱 걸린 거다. 맞아서 퉁붕부은 얼굴로 누워 있어야 할 환자가 멀쩡히 짜장면을 비비고 앉아 있으니 난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당신 말여..내가 소비자보호원에, 고발조치를 하려고 하는디 그러기 전에 한 번 더 물어볼 것이 있어요, 전치 이 주라고 하던디, 왜 한주를 더 추가 했는지 그 이유나 듣고 싶어요?"

 

 갑자기 피해자 얼굴이 굳는다. 다른 방문객들도 슬금 슬금 뒤로 내뺀다. 입원 환자들도 모두 나의 얼굴을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빨리 이유를 대라고 했다, 도대체 한주를 더 추가 한 이유가 뭐냐고?

 

 머뭇머뭇 원하는 게 뭐냐고 한다. 말도 정중하다.

나는 단 한마디만 했다. 합의서 한 장 쓰고, 팩스로 당장 경찰서에 보내지 않으면, 그 다음은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 때 마침 상범 엄마와 큰 아들이 나란히 들어왔다.

 

 상범엄마를 한 번 쳐다보고, 피해자가 그런다.

"병원비만 내주세요...제가 합의서는 직접 갖다 드리죠,,"

 

 상범 엄마가 피해자의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고맙다고 한다.

"그려 자네도 어머니가 있을 것 아녀? 나중에 복 받을 겨..암.

내가 병원비는 내 줄게.내가 죽어도 은혜 잊지 않을꼬마.."

 

어휴!! 오늘 같은 날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날이다.

상범엄니..앞으론 약장수한테 가지 마세요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꿀거덕 침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아프면 병원가야 하는데, 약은 안 먹냐구 하실테고 이래저래 나도 늙어가는 중인데

사람 살다보면 무슨 일이 어디서 뭐가 터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