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동창회를 가지 않았는데 작년에
한 동창이 이젠 동창회도 소규모로 지역구 모임을 갖는다고
나보고 꼭 나오란다.
애기인 즉 무슨소린가? 했더니
이젠 함꺼번에 모일려면 장소도 따로 빌려야 하고 경비도 많이 드니
수원은 수원에 사는 동창들만 모이고
서울은 나름 구가 다 틀리니 각각 모이기로 했단다.
그래서 나는 지방이니 경기도 모임에 포함되었으니 꼭 나오란다.
인원도 12명이니 누가 안 오면 딱 표시가 난다나.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 내가 몇 살이었지?
그 때 한 참 정부가 맘에 안들어 대학가 주변에 살았던 나는
늘 취루탄에 눈물 콧물 찔찔 흘리고 다닌 기억만 생생하다.
더군다나 말도 없이 살살 수업을 몰래 빼먹고 자율학습인가 뭔가 우리가 처음 생긴 그 수업에
교문에 주임 선생님 나가는 학생 잡고 있으니 공부에 뜻이 없는 나는 체육복 바지를 갈아 입고 학교에서 제일 낮은
담을 넘어 떡볶이에 오뎅국물을 마시며 히히덕 거리며 놀던 기억도 나고
그 당시 유일하게 우리 학교가 남녀공학이었지만
1층 2층 나눠서 남녀 학생을 구분 했으니 동창회를 나가도 아는 남학생을
하나도 없을 것이고. 이래 저래 핑계를 대고 싶은데 이 친구 나에게 한마디 하네.
" 야! 니랑 나랑 둘만 여자인데 너 안오면 난 못간다아?"
지역구모임이 어쩌다가 그렇게 남녀 성비가 안 맞냐? 참 내 일부러 그렇게 할려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학교 다닐때 공부는 남모르게 조용히 늘 꼴찌만 맴돌아 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졸업생 회보
열람 안하면 전혀 모를 나를 달랑 두 여학생을 포함시키다니 이거 참 안 갈 수도 없었다.
어찌 어찌해서 어느 조용한 한정식 집에 다 모이니
나 졸업하고 모두 처음 보는 중년이 넘은 아저씨들이고
나는 천상 수다쟁이 아줌마로서 마주보니 얄궂은 일이 생긴거다.
전교에서 늘 일등하는 학생은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간첩일 것이다.
그렇다고 늘 조용하게 꼴찌하던 나를 알아보면 그건 더 이상한 것이고.
그런데 그 늘 일등한 사람과 늘 꼴찌하던 나와 정면으로 앉아 있을 줄은
전혀 상상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요즘 여자들도 서로 명함 주고받기는 당연한 일인데
이거 나도 아줌마라고 명함을 만들어 둘 걸 그랬다.
다를 어디서 일을 하는지 물어 볼 것도 없이 명함을 주고 받는데
그 전교 일등한 사람 직업은 어느 법원에서 판사를 한단다.
속으로는 세상에 어떤 심심한 얼빠진 神이 학교 졸업하고 꼴찌와 일등이 이렇게 만나게 하는 운명적인
장난을 할까 괜히 웃음도 나고 그랬다.
사는 집애길 하는데 몇 평이네 집값이 올랐네 피가 뭐니 또 내렸냐? 결국 골프 치는 애기로 마무리하더니
느닷없이 조용히 있는 나보고 그러네.
" 니네 집은 몇 평이야? "
그래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 마당을 포함 백 평인디?"
모두 나를 쳐다본다. 내가 너무 넓은 집인가? 헤헤
그 후 자꾸 문자온다. 나오라고..대답으로 문자 보냈다.
" 어휴! 지금은 공부 중이여!"